한국인에게 집은 삶의 터전일 뿐 아니라 부(富)의 상징이다. 집을 한 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노후를 준비했다는 의미로 통하기도 했다. 또 20평대의 아파트에서 30평대로, 40평대로 넓혀가는 것은 부의 축적이자 성공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강남거지’니 ‘아파트의 노예’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집을 가졌으나 가난한 이들이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음을 비유한다.
집을 가졌으나 가난한 자들을 뜻하는 하우스푸어(House Poor)의 시발점은 미국이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우리는 집값에 낀 버블의 실체를 충격적으로 바라보았다. 널찍한 정원과 아늑한 내부를 가진 집에서 풍요로움을 구가하던 미국인들이 집값하락과 주택구입에 따른 금융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거리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지켜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부동산 버블을 지적하며 부동산가격 특히 주택가격의 하락을 대세론으로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정부의 정책과 주택시장을 주무르는 건설사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시장경제의 순리를 무시한 채 버텨왔다. 이제 강남의 주택을 보유했지만 원리금상환도 못하는 ‘강남거지’와 아파트를 통해 미래를 꿈꾸던 ‘아파트의 노예’들이 현실화 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보유가구의 가처분소득 보다 가계 빚이 1.4배 증가했다고 한다. 즉 집을 보유한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돈보다 갚아야 할 빚이 엄청난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택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았으나 원리금 상환으로 인해 생계에 부담을 느끼는 ‘광의의 하우스푸어’가 2010년 기준으로 156만9천 가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하우스푸어가 집을 팔기 위해 내놓아도 팔리지 않고 주택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경우 미국과 같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생계난에 집을 팔고 하우스푸어에서 무주택자인 하우스리스(Houseless)로 전락하는 중산층의 몰락이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인에게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이 현실과 미래를 모두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다. 하우스푸어가 양산되는 현실에서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 금융기관, 건설사의 장단에 현란한 보도로 현실을 왜곡하며 이익을 챙긴 언론이 서민들의 꿈을 앗아간 주범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우스 푸어는 현실이다. 현실로 다가온 위기를 ‘위기가 아니다’라고 진단하는 것이 더 큰 위기를 몰고 온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