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는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별이라는 장벽을 세워놓는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 그 아픔은 어떤 것에도 비길 수 없다.
선배의 병문안을 위해 병원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선배는 문병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워낙 간단한 수술이기도 했거니와 원래 건강한 체질의 선배였기에 입원실은 흡사 오랜 시간 보지 못했던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인 동창회 분위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선배와 이웃한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와 가족들은 참담한 얼굴로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40대 초반의 환자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잠시 후 잠에서 깬 그 환자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간간히 뱉어냈다. 새카맣게 타들어간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의 부인은 그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그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외에는 달리 그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녀 옆에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한 노인이 체념어린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죽을 사람은 그렇다 치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그러나 노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는 말을 쏟아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무리 제가 걱정이 돼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음을 앞에 둔 사람 앞에서 그런 말씀하시는 게 아니에요.”
“내가 말 안 하게 됐니? 지금 네 남편 수술비로 빚진 게 얼만데? 전세방에서도 쫓겨날 판인데, 저 어린 것들은 또 어떻게 먹여 살리려고,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아마도 딸 가진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완치 가능성이 희박한 사위의 수술비로 빚더미에 앉은 자신의 딸 앞에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홀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막막한 미래뿐인데, 이 상황에 속내라도 털어내고픈 어미의 마음을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말을 했어도 이는 막막한 심정에 한 번 내뱉은 한탄이며 넋두리였으리라. 어린 손자들이 아버지의 죽음보다도 더 두려운 가난의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다.
울음 섞인 탄식에 어느새 우리 일행은 웃음을 멈추고 묵묵히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간암 환자는 결혼 후 9년 동안 시내버스 운전사로 일하면서 초등학생인 두 남매의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아 근근이 생활해 왔다. 암 발병 사실을 확인하고 수술을 받았는데, 지금은 병원비가 없어 퇴원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열심히 일할 나이에 이게 무슨 꼴이냐는 한탄이 이어지자 사위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배운 재주가 운전하는 것밖에 없어 그 일이라도 천직으로 여기고 열심히 살았지만, 연거푸 죄송하다는 말을 눈물과 함께 내뱉었다. “당신이 왜 미안하고 죄송해요. 제가 당신의 뒷바라지를 잘못한 걸요.” 그녀는 남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내느라 정작 자신의 눈물은 닦지 못해 하염없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미안해, 여보.” “아니에요, 제가 미안해요. 당신은 지금껏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어요.” 부부의 대화는 서로의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이어졌다.
=에필로그= 사랑이라는 끈으로 서로를 묶어가며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원치 않는 이별의 순간을 맞아 끈이 끊어지게 된 이들. 나는 이들 부부에게서 절망보다는 사랑의 힘을 발견했다.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지라도 그들을 묶어놓은 사랑의 끈은 오랜 시간 함께할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호흡을 나누는 이 순간,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혼자서 나직이 드렸다.
‘마지막까지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주세요. 이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식들에게 남겨주는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박병두 작가·경기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