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봄바람 보다 앞서 모 방송에서 사극 열풍이 불고 있다. 장차 중전이 될 세자빈을 간택하는 장면에서 임금이 규수들의 영민함을 보고자 질문을 한다. “너희가 보기에 내가 몇 냥이나 돼 보이느냐?” 한 규수가 답하기를 한 냥이라고 답하고 그 뜻을 물으니 곤궁한 백성에게 있어 한 냥의 소중함과 절박함을 이야기하며 한 냥을 중히 여기는 백성들을 위해 선정을 베푸는 것이 성군의 덕목이라고 아름다운 용모보다 더 빛나는 지혜를 드러내 보인다.
예로부터 왕비 간택에 관한 잘 알려진 일화가 있다. 그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만백성을 따뜻하게 해주는 목화가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답한 규수가 왕비로 책봉됐다는 이야기가 종종 인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어디 꽃뿐이라 하랴. 우리 집 주변에는 어린 아이들을 태운 노란 차가 오가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아침이면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선생님이 반기는 차를 타고 손을 흔들며 사라진다.
우리 나이쯤이면 대부분 자녀들이 집을 떠나 식구가 없어 음식을 해도 맛도 모르겠고 없어지지도 않다가 그냥 버리기 일쑤라고 불평들인데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 중에 아이들이 여럿이라 큰 아이들이 대학생인데 그 밑으로도 중고생이 있고 늦둥이까지 있어 집안에 웃음꽃이 핀다고 한다.
처음에는 큰 아이들이 창피하게 무슨 늦둥이냐고 했으나 지금은 서로 데리고 논다고 한다. 쉬는 날 우리 집에 데리고 왔는데 맑은 얼굴에 하는 말도 어찌나 예쁘던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긴 나도 우리 아이를 기를 때 얼마나 예쁜 짓을 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와 함께 인구폭탄이라는 말도 그때 나온 말이니 가히 그 분위기를 두말할 나위가 있을까. 그 시절의 잘못된 정책이 지금의 고령화 사회를 지탱하기에 어려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으니 지나고 하는 생각이지만 그 반대로 여성 일자리나 보육시설을 위한 정책이었더라면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결국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해야 할 밖에. 어느 가난한 사람의 집에서 날마다 웃음소리가 들려와 까닭을 물으니 비록 가난하지만 빚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저축도 하니 더 바랄게 없다고 했다. 빚을 갚는다는 뜻은 부모님을 공양하며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요, 자식을 길러 노후를 바라니 저축이라는 의미 깊은 말이 있다.
만백성을 따뜻하게 해 주는 목화도 분명 아름다운 꽃이라 해야 마땅하겠고, 그 옛날 한량들이 기생을 일컬어 해어화(解語花)라 했으니 그 또한 아름다운 꽃이라 해두자. 그 꽃들이 아무리 아름답기로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보다 더 아름다울까.
오늘도 제 또래의 친구들과 하루를 시작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따라 봄은 오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 문협 사무국장 ▲플로리스트
/정진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