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어둑할 무렵 지휘본부차를 앞세운 119가 다급하게 달려 도로변 주차해 놓은 차량 근처에서 급커브를 그어 멈춰 선다. 뒤를 따르던 소방차도 지휘본부 차량을 따라 멈춰 서고 대원들이 차량을 주변을 살피더니 논두렁으로 내려가 눅눅하게 타고 있는 불씨를 끈다.
차량을 지나치던 누군가가 차에서 연기가 난다며 차량 번호와 함께 119에 신고를 했고 긴급 출동한 것이다. 담배꽁초가 원인인 듯, 불이 논두렁을 태우고 그 연기가 길 한 켠에 주차해놓은 차량 밑으로 스며들어 언뜻 보면 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시민의 신고와 119의 발 빠른 대처로 불씨는 바로 잡혔지만 자칫하다간 큰 사고로 변질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건조해진 대지와 거칠게 몰아치는 바람, 도로변에 주차해 놓은 많은 차량을 생각해보면 작은 불씨 하나가 큰 사고를 낼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
119대원들은 그 불씨가 완전히 제거된 것을 확인하고 자리를 이동했고 모여든 사람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 또한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몹시 바람이 부는 봄날이었다. 아버지 옆에 누워있던 네 살 난 남동생이 라이터를 들고 뛰어나가더니 축사 옆에 쌓아놓은 짚동가리에 불을 붙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버지 어머니와 다른 가족들도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불은 무섭게 타올랐고 동네 사람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나서 진화를 했지만 축사는 전소됐다. 축사에서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화기 속에서 떨고 있는 어미 소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새끼를 가슴팍에 품고 눈물을 흘리던 소, 아버지는 서둘러 소들을 대피시켰고 불길이 너무 세서 불이 살림집과 옆집에 옮겨 붙을까봐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행히 축사와 창고만 전소되는 것으로 불길은 잡혔지만 아버지는 그 불씨가 살아날까 밤을 세워가며 물을 뿌렸고 그 사건으로 우리 집은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었다. 가만히 누워있던 아이가 왜 라이터를 들고 나갔으며 나가자마자 짚동가리에 불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화재가 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3월과 4월에 산불이 가장 많이 난다고 한다. 산불의 원인중 하나가 산을 찾는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와 기도하기 위해 켜놓은 촛불 등 작은 곳에서 시작해 대형 산불로 확대되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도 간혹 보인다. 창문을 열고 운전을 할 때 다른 사람이 버린 불씨가 차 안으로 날아들어 옷에 구멍이 생기고 작은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난다. 누군지 잡을 수만 있다면 손해배상도 청구하고 잘못에 대한 대가도 치르게 해주고 싶었다. 생각 없이 저지른 작은 실수가 타인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막대한 자연을 훼손시킬 수도 있다.
산불의 원인 중 담배꽁초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작은 방심과 나 하나쯤이야 하는 안이한 생각이 우리의 목숨과 재산을 위협하고 소중한 자연을 순식간에 잃게 한다. 방관자적 입장에서 벗어나 나부터라는 작은 실천이 나와 이웃과 우리 모두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첫 시작이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한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