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달렸을까, 대구를 지난지도 꽤 됐을 쯤 휴게소가 있는 시티재 언덕배기에 다달았다. 산다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걸 알아버린 지도 꽤 된 것 같은데 늘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고향을 바라보고, 말없이 엄마 곁을 다녀가는 습관은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우고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뽑았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물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언젠가 친구가 해 준 말이 생각났다.
“시티재에 떨어지는 빗물을 잘 봐래이, 똑같이 떨어져도 어떤 녀석은 이쪽으로 가고 어떤 녀석은 저쪽으로 가고. 거기서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떨어지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기라.”
한참을 서서 자세히 관찰해 보니 정말 그랬다. 시티재 가운데로 떨어진 빗물은 동시에 떨어졌지만 엇갈려 흐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 물이 안강 쪽으로 흘러 들어가면 형상강을 거쳐 바로 포항 앞바다로 쉽게 찾아들지만 영천 쪽으로 흘러들어간 빗물은 금호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 남해로 들기까지 빙빙 돌아돌아 먼 길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갈림길에서의 서로 다른 인생길, 그건 선택이 아니라 팔자처럼 주어지기도 해 인생 험히 살기도 하고 쉽게 풀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빗속을 다시 출발해 가는 내내 떠나지 않는 생각, ‘왜 빗물의 목적지를 바다로만 보았을까’ 빗물은 분명 무리지어 흐르다 바다로 들기도 하고 패인 웅덩이에서 쉬기도 하고, 지하수로 고여 한동안 수행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증발해 구름이 되고 다시 땅으로 떨어져 빗물이 되는 그들의 소임을 다하는 생을 살고 있을 뿐인데.
초를 다투는 경쟁의 레일 위에서 21세기를 달리고 있는 나와 많은 사람들. 결코 내가 선택하지 않은 부모님이라는 환경을 만나 자란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공부라는 경쟁의 잣대를 가지고 키 재기를 하고, 취업이라는 좁은 골목으로 몰렸을 때도 이상적인 직장에 대한 잣대를 돈에 두는 경우가 많다. 마치 연봉이 높은 곳으로 가야 성공된 삶을 살아가는 듯, 바다를 곧 흐르는 물의 목표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넓은 바다의 물만 물인 것은 아니다. 수력발전소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물, 해수욕장의 바닷물, 농작물에 주어지는 농업용수, 웅덩이에서 갖가지 미생물들의 안식처로 쓰이는 물 등 다양한 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물처럼 사람들도 마찬가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산천에 들꽃처럼 구석구석 자리 잡은 사람들. 꽃이 한 가지 색이라면 얼마나 단조로울까, 그건 재미없는 세상이다. 갖가지 색깔의 갖가지 모양의 갖가지 성질의 사람들이 살아야 그 또한 다양한 세상을 연출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내 모습이 때로는 풋풋한 초록이었다가 세월 흘러 히끗한 갈색으로 변해간다 해도 계절의 변화처럼 달라지는 그 시간을 그대로 인정해 나갈 것이다.
빗물의 목적지를 바다에만 두지 않기로 했다. 멈춰 웅덩이에서 기회를 기다리는 그 빗물에게도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평택문협 회원 ▲한국에세이작가연대 회원 ▲독서토론논술 안중문화원장
/이상남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