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서 봄소식이 전해온다. 매화와 산수유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봄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얼어붙은 대지를 녹여주지만, 탈북자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당국은 탈북자들을 체포해 계속 강제 북송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탈북자 31명도 이미 송환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그들의 송환 반대에 많은 세계인들까지 동참했으나, 들은 척도 않는다. 연예인 40여명도 탈북자를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중국 땅에서 인간 이하의 삶으로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이 수만 명에 이를 것이라 한다. 중국은 그들이 송환되면 어떤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비인간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한때 우리나라도 탈북자들의 영사관 진입을 외교적 처리문제로 귀찮게 생각해 담장을 높이고 경비를 강화하는 등 문전박대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새삼, 중국에서 내가 만났던 탈북자들의 기억이 떠오른다. 1998년쯤 하북성(河北省) 한 도시에서 공장을 하고 있을 때, 거지꼴을 한 젊은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부인과 어린 딸을 데리고 탈북했으며, 병이든 딸은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고 부인도 몸이 아파 어느 조선족 집에 숨어 있다고 했다. 부인이 예쁘게 생겨 브로커들이 자꾸만 1만 위안에 팔라고 한다고 했다. 아내를 어떻게 팔겠냐며 울먹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충격적인 사연들이었다. 정성껏 밥을 지어 먹이고 얼마간의 돈을 줘 보냈다. 물론 조선족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했지만, 그의 얼굴에 그동안의 행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즈음 시(市) 공안에서 한국어 통역을 보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조선족 통역을 보내줬다. 10대를 포함한 젊은 탈북여성 8명이 부근 농촌마을의 노총각, 홀아비, 심지어 70세가 다 된 늙은이에게까지 팔려와 혹독한 노동착취와 16살 소녀 등 몇몇은 임신해 배가 불러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가 막혔다. 당시 중국에는 탈북 여성은 나이와 인물에 따라 3천 위안에서 1만 위안이면 노예처럼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북한과 두만강을 사이에 둔, 도문(圖門)에 출장이 있었다. 전직 공안이 운영하는 사우나를 통역이 알고 있어 그곳으로 가게 됐다. 사우나에는 탈북 한 여성 안마사가 있었다. 주인이 공안 출신이라 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경계심을 보이며 겁에 질려 있었다. 어렵게 입을 뗀 그녀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탈북한지 6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어머니는 굶어 죽었으며 여동생과 함께 탈북해 연변의 브로커를 통해 자기는 이곳으로 왔지만, 동생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했다. 마을 사람 3분의 1이 굶어 죽었다는 북한의 참상과 탈북 이후의 사연을 들으며 분노했으나 팁을 주는 것 외는 어쩔 수 없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지금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부디 고난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우리 국민뿐 아닌 세계인들까지 한 목소리로 호소하는 탈북자 북송 반대를 중국은 외면하지 말고 순수한 인권 차원에서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보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온 국민 모두의 염원일 것이다.
/김용순 시인·수필가
▲월간 한국수필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가평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