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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는 119구급대원이다

 

“세월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다” 2005년 1월 큰 꿈을 가지고 소방에 입문했고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출동벨소리에 가슴 설레며,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일까? 어떻게 다친걸까? 궁금해하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에 보람을 느끼며 출동을 다니던 신입 소방관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응급환자보다는 욕하고 폭력적인 주취자,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상습신고자들과 단순히 집에 데려다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하게 됐다.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쳐주고자 구급차는 택시가 아니라며 이야기도 해보고 나름의 방법을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방에 입문하고서 첫 번째 슬럼프에 빠졌고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과 함께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갔다. 선배들의 조언도 나에겐 큰 도움이 되질 못했다. 갈팡질팡 힘든 시간을 보냈으며, 20대의 끝을 잡고 결혼과 임신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사랑스런 딸아이가 태어났고 아이를 키우면서 소방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슬럼프는 이렇게 지나가게 됐고, 슬럼프로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휴식의 시간을 권유하게 될 만큼 여유가 생기게 됐다.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새벽 잠을 자고 있던 중 쌕쌕거리는 호흡소리가 들려왔고 출동벨소리는 없었지만 긴급한 상황을 직감했고 몸이 반응했다. 방안의 불을 켜서 둘러보니 남편의 얼굴이며 손과 복부에 부종과 피부발진이 관찰됐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알레르기이지만 심해지면 기도부종으로 인한 호흡곤란이 발생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무서운 ‘아나필라틱 쇼크’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결혼 전부터 알레르기가 있어 응급실에 몇 번 실려갔다는 말은 들었어도 눈앞에 내 가족이 알레르기로 인해 호흡곤란이 발생하다니, 정말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점점 얼굴의 부종이 심해지면서 호흡은 더욱 거칠어졌고 나는 119를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를 등에 업고 동동거려봤지만 호흡조차 힘들어 하는 남편을 차까지 데리고 내려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하는 수 없이 119에 신고하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나는 큰 돌덩어리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119의 도움을 기다리는 힘없는 사람이 됐고 ‘119가 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구나’라는 한없이 고마운 생각을 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힘은 들지만 시민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참 소중한 것’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저도 구급대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구급차는 택시가 아니라고 부르짓던 내가 너무 부끄러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새벽 출동은 많이 힘드시죠”라고 물었더니 그 분은 괜찮다고 웃음지으며 병원으로 이송해줬다.

수원에 살고 있었던 우리는 수원소방서 119구급차를 타고 성빈센트병원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았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회복돼 가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택한 소방이 자랑스러웠고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되거나 사회에 나가서도 우리 부모님은 소방관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다. 남편은 5시간만에 아무이상 없이 퇴원했고, 항상 항히스타민제를 가지고 다니게 됐다.

119의 감사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몇 달 뒤 복직을 했고 매번 출동을 나갈 때 마다 환자를 만날 때마다 당시 나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친절한 119구급대원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새삼 초심을 되찾은 나를 발견하게 됐고 세월이 흐르며 몸으로 습득된 경험이 나의 큰 재산이 됐다. 나는 지금 어떤 상황이 발생하든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119구급대원이 돼 가는 중이다.

/이종옥 군포소방서 오금안전센터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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