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돌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준비한 선물과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가 맛있는 음식도 드시게 하고, 용돈도 드리고 온다. 물론 조금은 사는데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리라. 그마저도 어려운 사람들은 꽃바구니를 보내거나 통장으로 용돈을 송금해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평소에 부모님을 잘 모시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동안 사는데 바빠 본의 아니게 저지른 불효라는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려는 마음도 없지 않다고 해야겠다.
요즘 같은 세태에 있어 효사상은 구시대의 낡은 유물로 취급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부터 아려오고 더러는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언제나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살아오신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지금은 부모님이 근력이 있으시니까,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맞벌이를 해야 하니까, 집이 너무 좁아 나중에 넓은 집으로 이사하면 등등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잘 모시는 편이 좋을 거라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예전에 교과서에도 실려 너무나 잘 알려진 청개구리 이야기가 있다. 항상 엄마 말을 안 듣고 반대로만 하는 청개구리를 두고 눈을 감으며 개울가에 묻으라던 유언에 따라 개울가에 엄마를 묻고 비만 오면 우는 만시지탄의 표본으로 묘사되지만 사람은 이와는 다르다. 어렸을 때는 자녀가 말을 안 듣고 부모님 걱정을 끼치지만 자식이 장성하고 부모님이 연로해지면 역할이 바뀐다. 부모님은 입고 싶은 것도 드시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며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신다. 그러나 몸이 늙는다고 마음도 같이 늙지는 않는다. 필요 없다고 하시면서도 속맘으로는 필요하시지만 자식들 돈 쓰는 게 안쓰러워 그렇게 말씀하시는 줄을 서로가 잘 알고 있다.
요즘은 시골 동네마다 마을 회관이 번듯하게 지어지고 거기에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방이 있어 한가한 때엔 그곳에 모여 여가를 보내신다. 그러다가 한 분이 자식들로부터 안부 전화를 받으시면 모든 시선이 그리로 쏠리고 이어지는 자랑에 뿌듯해 하신다. 더욱이 명절 때나 이맘 때는 모여앉아 한담을 즐기시는 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신다. 언제 자식들에게서 전화가 올지 몰라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전화를 받으시고 차례차례 자리를 뜨는 바람에 슬슬 파하는 분위기에 접어들도록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만지다가 일어서는 분의 표정은 사뭇 쓸쓸한 빛이 덮인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하였을까. 문안 편지 보다 몇 배 손쉬운 전화, 어찌 보면 이 시대의 면죄부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그도 부모님이 생존해 계시는 동안이라야 유효하다.
/시인 정진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