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일)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칼럼] 아버님은 ‘씨 뿌리는 사람’이셨다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오늘날 우리가 화가하면 흔히 떠올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대표작 <감자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을 비롯해 8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나는 그 많은 그의 그림들 중에서 <씨 뿌리는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그 그림을 보면 내 고향인 해남의 논밭과 그곳에서 평생을 보내신 내 아버님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씨 뿌리는 사람>은 고흐가 고갱과의 불화로 귀를 자르고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에 밀레의 영향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밀레의 그림을 모사한 그림이다. 그러나 <씨 뿌리는 사람>은 단순한 모사품이 아니다. 당시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을 모사하는 것을, 다른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음악가와 같은 것으로 여겼다. 이 그림에는 씨 뿌리는 사람이 한 명 등장한다. 석양이 질 무렵에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닐까 싶다. 씨 뿌리는 사람은 어둡게 보이지만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에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화해하는 반 고흐의 내면이 엿보인다. 씨 뿌리는 사람에게는 어두운 이미지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희망하는 이미지가 함께 엿보인다.

‘누군가 좀 더 위대해지고 싶다면, 반드시 땅으로 내려와야만 한다. 그러니 너도 이리로 와서 드렌트의 대지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워라.’ 위 인용문은 고흐가 파리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편지에 쓴 글이다. 위 인용문만 놓고 그림을 해석하자면,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갈등하던 고흐가 ‘씨를 뿌리는 것’으로 일종의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찾았다고 하면 그만일 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린 고흐 자신과 직접 만날 필요도 있다. 우리는 석양을 보고 일출과는 다른 이미지를 느낀다. 쓸쓸함, 고즈넉함, 슬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씨 뿌리는 사람>에 나타난 석양의 이미지는 일반적인 석양과는 다르다. 그리고 밀레 그림의 석양보다 더 희망적인 느낌을 준다. ‘해는 지지만 다 지지 않아서 다음날 또 뜬다’는 이미지를 준다. 핏빛이 아닌 노란빛으로 하늘을 물들인 해는 씨 뿌리는 사람과 잘 어울린다. 해는 그냥 지고 말 것 같은 태양이라기보다는 싹이 돋아나듯 다시 생생하게 살아서 나타날 것 같은, 영원히 지지 않을 것만 같은 해다. 생명의 고귀함, 그리고 삶의 고귀함을 표현한 것이다.

한 평생 동안 논밭을 일구셨던 내 아버지는 봄이 오면 항상 씨앗을 뿌리셨다. 해가 뜰 때면 집 밖을 나가셨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서야 고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씨앗처럼 무럭무럭 자라날 자식들이 있었으므로 아버지의 그 위대한 씨 뿌리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러던 아버님이 병원을 가시더니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계신다. 일전에 인삼농장에서 쓰러지신 이후 팔순이라는 나이 때문에 앞으로 더 이상 씨앗을 뿌리지 못하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항상 건강하신 분이었기에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아버님이라면 언제까지라도 그 어떤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실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버님은 노인생활체육회 회장을 맡아 전국 이곳저곳에 가서 경기에 참여하셨다. 그러시던 아버님이 더 이상 씨앗을 못 뿌리고 계시는 것은 심부전증 때문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광주에 있는 병원에 가서 아버님을 뵀다. 아버님은 코를 골고 깊은 숙면에 취해 계셨다. 감기몸살도 훌훌 털고 일어나 씨앗을 뿌리시던 아버님, 손수 운전해 전국을 다니시던 아버님은 가재미가 돼 계셨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는 불현듯 그 옛날의 일들이 떠올랐다. 씨앗을 뿌리고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님에게 용돈을 안 준다고 생떼를 부렸던 학창시절이 생각난 것이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늘 아무 말 없이 용돈을 챙겨주셨다. 술에 취해 들어오시는 날에는 한바탕 동네를 들썩이게 하는 큰 목소리로 ‘번지 없는 주막’을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시던 아버님, 농사일이 만만치 않으셨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씨앗을 뿌리시던 아버님의 그 옛날 모습이 그립다.

/박병두 작가·경기경찰청 정훈관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