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금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민주통합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킹메이커(King Maker)다. 박 원내대표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을 위해 갖은 고생과 지략을 과시했다. 김대중 대통령 치하에서는 비서실장 등을 역임하며 대통령(大統領) 밑의 ‘소통령(小統領)’이라는 절대권력을 향유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박지원’이라는 이름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이 당시 노무현후보에게 있음을 특유의 감각으로 감지한 박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물론 노 후보의 지지도 하락에 후보교체를 고려하는 지나치게 빠른 행보로 후에 영어(囹圄)의 몸의 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그는 최근 제1야당의 원내대표에 오르며 ‘킹메이커’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사실 킹메이커(King Maker)는 정치교과서에 나오는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용어가 주는 함축적 의미는 대권주자들을 옹립하는 측근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위치의 인물을 묘사하는데 적확하다.
우선 킹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판을 읽은 뛰어난 ‘촉’을 바탕으로 될성부른 잎을 구별하는 본능적 감각이 필요하다. 여기에 주군의 각별한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지모와 형벌을 대신하겠다는 충성심, 그리고 가족을 멀리하는 성실함까지 갖춰야 한다. 하지만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도 ‘2인자’라는 자리에 대한 통찰력이 없거나 절대권력을 꿈꿀 경우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킹메이커의 위상이 지나쳐 달이 해를 덮을 정도가 되면 버림을 받기도 한다.
과거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을 만든 공신이자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의 최대 주주로 각광을 받은 것은 허주(虛舟) 김윤환이었다. 고인은 5선의원으로 특유의 친화력으로 킹메이커의 위세를 떨쳤으나 자신이 대권후보로 옹립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부터 버림을 받고 재기를 노리다 유명을 달리했다.
임태희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권도전을 선언하며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킹메이커가 될 것을 요구해 정치권이 시끌시끌하다. ‘퀸이 아니라 킹메이커가 되라’는 임 전 실장의 일갈에 친(親)박근혜계 의원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재미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킹메이커였던 이재오 의원도 “킹메이커가 아니라 킹이 되겠다”며 대권도전에 나선 점이다. 아쉬운 것은 킹메이커 논란에 국민은 없고, 오직 대권을 향한 권력욕만 부각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