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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무단횡단

온통 푸른 것들 천지다. 빠르게 잎을 꺼내놓은 나무와 꽃 진 자리 맺힌 열매들 틈으로 태양에 반사된 새의 노래가 싱그럽다. 초파일 연등이 허공을 단단히 잡고서 불심의 향방을 헤아리고 오월의 일정들이 푸른 항변을 받아내며 초여름의 길을 내고 있다.

모심기를 위해 가두어둔 논물에 일찍이 자리 잡은 개구리의 알서는 소리가 분주한 초저녁을 후끈 달구고 긴 다리를 천천히 옮기며 한가로운 백로의 우아함 또한 요즘의 풍경이다.

푸른 것들에 매혹되어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길 위에서 납작한 죽음을 만나게 된다. 고양이 혹은 개가 가장 많고 조금 더 시골길로 나서보면 오소리며 너구리 등 야생의 동물들도 흔히 보게 된다. 도시 인근에는 신도시나 물류창고 그리고 그곳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내다보니 거처를 잃어버린 동물들이 찻길로 뛰어들어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하고 도로 한복판에서 흉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안면도 근처 비포장도로에서 막 커브를 긋는데 비탈길을 내달리던 노루 두 마리와 마주쳤다. 물론 노루도 놀랐겠지만 운전자 또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멈출 수도 달릴 수도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한 마리를 차 밑으로 빨려들고 한 마리는 가까스로 비켜서 보리밭으로 달아났다. 차 밑에서 버둥대는 노루, 천천히 차를 후진시키자 비틀거리며 일어서선 이내 인근 산으로 숨어들었다. 엉겁결에 달아나긴 했지만 많이 다쳤을 것이다. 비탈에서 노루가 속도를 줄이면서 앞다리를 짝 끄는 바람에 돌이 튕겨 자동차 앞 유리에 금이 가는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그때 놀란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무엇보다도 앞 다리를 끌며 속도를 줄이는 노루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대낮에 도로변까지 야생동물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많이 증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멧돼지가 출몰하여 인명피해는 물론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산 밑의 밭은 무서워서 혼자 가지도 못할뿐더러 산소를 파헤쳐 놓고 뒤란까지 와서 꾹꾹... 울음소리를 낼 때는 정말이지 공포감을 느낀다는 주민의 하소연을 들었다.

멧돼지 목욕탕을 보여 준다는 주민을 따라 조금 산을 오르자 오솔길이 나왔다. 짐승들이 다니는 길이라고 했다. 마치 등산객이 낸 좁은 길처럼 나 있었고 주변의 큰 나무는 돼지 키만큼의 높이에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돼지가 목욕을 하고 몸을 닦아낸 흔적이라고 했다. 발자국이 축축한 것으로 보아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멧돼지는 천적이 없어서 개체수가 많이 증가하는 반면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산을 내려오고, 사람과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고 한다. 뉴스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만 듣다가 실제로 보니 얼마나 피해가 심각한 지 감히 짐작이 된다.

길에서 만나는 납작한 죽음도 안쓰럽고 흉하지만 민가에 까지 내려와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의 실태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시선을 옮길 때마다 푸르게 번지는 초목들의 싱그러움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함께 어우러진 오월. 야생동물의 무단횡단과 질주를 막는 일 또한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2006년) ▲안견문학상 대상(시)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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