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남아 육지에 갇힌 섬이 외로움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섬의 정체성은 바다 위에 떠 있어야 한다.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씻었던 섬, 그리고 무수한 바다 생명들의 향연을 응시하며 바다와 하늘을 연결하며 자연스러운 소통의 사닥다리가 되었던 섬. 그 섬에서 바다생명들이 휴식을 취하고 때론 물새들도 둥지를 틀었다.
바다를 육지로 변용시킨 오랜 기간 간척사업이 벌어졌던 곳을 여러 번 탐방하며 지켜봤었다. 태안 안면도 가는 길,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바다가 거대한 육지로 탈바꿈한 서산 방조제 A, B지구를 보았다.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내수면도 아니요, 드넓은 농토도 아닌 구릉처럼 돌출된 봉우리이다. 물론 얼핏 보면 그냥 솟아오른 산봉우리다. 주변은 온통 육지로 농사지을 수 있는 풀들로 무성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랫부분에 검은색 바위가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과거엔 섬이었음이 분명하다.
한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섬은 외로움에 젖어 바다를 몹시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방조제로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쐬면서 그런 시름을 달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간의 육지에 대한 욕망으로 간척사업을 탐욕적으로 하다 보니 육지의 면적은 늘어났는지 모르지만 섬들은 고향을 상실한 채 육지에 갇혀있게 됐다.
또 다른 한 곳이 있다. 평택항이 들어서기 이전, 평택 포승면 만호리에 위치한 바다와 경계를 이루던 절벽이 어느 틈엔가 육지에 솟은 조금만 산봉우리로 정체성을 바꿨고 그 아래 메꾸어진 지난 과거 위쪽으로 건축물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과거엔 밀물과 썰물이 오고가던 바다. 지금은 주택단지가 돼 있는 곳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그곳에 서 있으면 과거에 대한 아련한 흔적만이 남아있고 바다는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췄다. 해풍을 맞으면서 자랐던 풀들만 무성하니 과거 자신의 정체가 바다로 이어지는 절벽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곳에서 느끼는 공통점은 바다를 향한 절벽과 섬들이 몹시 외로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바다를 그리워하는 육지의 산봉우리. 우리 인간의 소용에 의해 그 섬은 정체성을 산봉우리로 바꿔야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더욱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다. 어쩌면 이런 곳의 산봉우리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인간의 탐욕에 의해 정체성을 짓밟혔다고도 말할 수 있다. 훼손된 바다와 육지와 섬의 정체성. 우리 자신의 일그러진 형상을 목도(目睹)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육지에 갇힌 섬. 드넓은 대양을 향한 정념들이 무참히 짓밟힌 채 방조제너머 바다를 응시하는 산봉우리의 형상이 너무나 외롭다. 자유를 향한 꿈들이 육지에 갇힌 채 해풍을 맞으며 그 외로움들을 달래고 있을 과거의 섬. 만일 인간이 이렇게 이유도 없이 정체성을 상실한 채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쳐 있을 것 같다. 수평선 너머 이상향을 꿈꾸는 섬들. 이제는 그 섬들을 볼 수 없다. 다만 육지에 갇힌 섬으로 우수와 애절함을 속으로 삭이다 보니 해풍이 몰려와도 응대할 수 없는 정체성의 변질. 육지에 갇힌 섬을 보면 한없이 애달픈 마음을 지을 수 없다.
▲1992년 시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