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에 개봉된 영화 ‘파리넬리’는 18세기에 실존했던 ‘카스트라토(Castrato)’를 그리고 있다. 당시 관객들에게 충격에 가까운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보였던 파리넬리는 ‘카스트라토’였다.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후 음역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여성의 음역을 내기 위해 남성을 거세한 가수를 의미한다. 그러나 관객을 홀리던 미성(美聲)의 뒤에는 중세시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광적 만행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향한 인간의 왜곡된 열망이 숨어 있다.
여성을 비하하던 중세유럽의 성당에서는 합창단이 모두 남성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여성의 소프라노 음역대를 소화할 필요에 따라 저질러진 만행이 어린 남자아이의 생식기를 거세하는 ‘카스트라토’였던 것이다. 파리넬리가 활약했던 18세기에는 이러한 필요에 따라 매년 6천명이 넘는 소년들이 거세를 당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 중에 가수로 성공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실패한 나머지는 대부분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양의 ‘카스트라토’가 종교적 거세행위였다면 동양의 ‘내시(內侍)’들은 정치적 이유에서 남성을 거세당해야 했다. 내시 혹은 환관으로 불렸던 이들은 구중궁궐에서 ‘왕의 여자’들과 함께 살아야 했기에 아예 남성을 제거해야 했는데 최고 권력자의 측근으로 남성을 상실한 대신 권세를 탐했던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내시가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조선의 경우 내시가 되고자 할 경우 남근과 고환뿌리까지 완전히 거세해야 했기에 지망자 가운데 80%이상이 사망했다고 한다.
앞서 등장한 ‘카스트라토’나 ‘내시’가 자발성을 표방하고 있다면 ‘화학적 거세’는 강제성을 띠고 있다. 최근 법무부는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상습적 성범죄를 저질러 온 40대 남성에게 처음으로 ‘화학적 거세’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화학적 거세’는 성욕을 감퇴시키는 약물을 3개월에 한 번씩 투여해 성적 충동이나 환상을 줄이고 발기력도 억제시키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른 ‘화학적 거세’는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의 성도착증 환자 가운데 중재범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시행된다. 법원은 최대 15년까지 ‘화학적 거세’를 명령할 수 있는데 문제는 약물을 끊을 경우 곧바로 원상태로 회복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를 경악케 하는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사범에 대한 영구적 대책은 아직까지 미비한 듯하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