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인가 TV에서 방영한 ‘뿌리깊은 나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세종을 중심으로 한글의 창제과정에서 목숨을 걸었던 실존인물과 가공인물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무엇보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졌던 한글의 위대성과 애민정신, 그리고 한글을 지키려는 이들의 충정은 오늘날의 시각으로도 눈물겨운 감동을 주었다. 픽션(Fiction)이 아닌 정사(正史)에 따르면 한글은 조선 4대 임금인 세종이 1443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화자(話者)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이두나 구결은 불편했다. 그렇다고 평생을 배워야 하는 한자는 어렵고 일반 백성은 배울 시간이 부족했다. 한글은 창제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간난신고(艱難辛苦)에 시달렸다. 태어날 때부터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은 한글은 오피니언 리더들로부터 언문(諺文) 혹은 반절(反切)로 불리며 폄하되더니 심지어 여자들이 배우는 글이라는 의미의 ‘암클’, 아이들이 배우는 글이라는 의미의 ‘아햇글’로 경시됐다.
여기에 한글의 창제 주체를 두고 세종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대두되면서 한글의 의미를 격하하려는 의도로 표출되기도 했다. 세종실록은 분명 훈민정음을 세종이 직접 만들었다고 전할뿐 누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15세기 학자인 성현은 저서인 ‘용재총화’에서 세종이 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글을 만들도록 명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같은 갑론을박은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의 애민정신을 훼손할 수는 없다.천재이면서 노력까지 아끼지 않았던 명군(明君) 세종대왕의 통찰력과 애민정신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또 한글의 과학적 창제원리는 한글을 쉽게 깨우치는 외국인들의 예에서 얼마든지 확인이 가능하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처음 지은 주시경 선생은 한글이 ‘크다’, ‘바르다’를 의미하는 고유어 ‘한’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이어 오직 하나뿐인 좋은 글, 온 겨레가 한결같이 써온 글이라고 하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오늘날 한글은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는 정신적 지주이고 편의성은 IT기술과 접목돼 세계로 향하고 있다. 우스운 것은 1991년 정부는 공휴일이 너무 많아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며 공휴일 지정을 취소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치권이 19대 국회의 첫 사업으로 10월9일 한글날을 다시금 공휴일로 지정하는 법안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한글날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민족의 얼을 되새김하는 날이다.
/김진호 편집이사 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