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시에 살고 있는 김 할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자식을 키웠으나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해 노후 준비는 생각조차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자녀들을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려 자식들한테 손을 벌리지 않으려고 그동안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갑작스럽게 대동맥류 출혈로 수술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뇌병변 1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수술비는 보험금으로 해결했으나 생활비가 끊긴 김 할아버지는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한 형편이었으나 자식들의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이러한 딱한 사정을 알고 마을 이장이 국민기초생활보장 혜택을 신청하도록 안내했으나, 중소기업 회사원인 장남의 근로소득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장남은 자녀 양육과 부친의 병원비, 간병비 등을 생각하며 그저 막막해 했다.
자식의 부모부양, 부담감으로 변질
“시집간 딸자식이 아비를 부양하나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원해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잊을만하면 주민 센터를 찾아와 고성을 지르는 민원은 기초생활보장 담당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접하는 민원일 것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어릴 적 양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족관계 단절을 내세워 기초생활보장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호소하지만 일선 기초생활보장 담당자들에게 부양의무자 파악을 위해 가족관계 단절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권자의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 두 가지 기준이 충족돼야 법정급여를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1999년 제정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2000년 10월 1일 실시되면서 우리나라의 공공부조는 나눔의 미덕을 향한 대장정을 출범했다. 지난 10여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강산이 변하듯 각고의 노력을 거쳐 많은 변화들을 이뤄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부양의무자 범위의 축소와 부양 능력 판정 기준의 조정, 수급자 재산 기준 인상 등 수급자 선정 기준을 합리화하기 위한 노력들을 들 수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경우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그동안 꾸준하게 이뤄져 왔다. 특히 부양능력이 있다고 보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이 너무 낮아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감안해 올해부터 노인, 장애인, 한부모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부양의무자의 소득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결단을 내렸다.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266→379만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과 재산이 있는 노인이라 하더라도 부양의무자인 아들에게 266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을 경우 수급자로 보호받지 못했으나 올해부터는 그 기준을 379만원으로 대폭 완화해 수혜계층을 확대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1998년 89.9%에서 2010년 36.0%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연대의식이 급격히 약화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자녀의 부모 봉양이 의무감에서 부담감으로 점점 변질돼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류에 맞춰 제도 개선 시급
국민의식이 가족부양에서 정부와 사회의 책임으로 전환돼 가고 있는 시대흐름에 맞춰 우리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우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의 전면 폐지까지는 어렵다하더라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생계에 위협을 받는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우리나라 공적부조의 큰 축을 담당하는 훌륭한 제도라는데 이견을 달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가족부양이라는 원칙하에 설계된 것이 사실이지만 노도처럼 밀어닥치는 시류의 변화를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