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을 부리던 올 봄도 그럭저럭 다가고 이제는 여름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하리만치 더운 날씨가 이어진다.
우리 집 근처에 종묘상이 있어 봄이면 언제나 북새통을 이룬다. 가족들끼리 배추며 오이, 호박, 고추 등 야채나 토마토, 딸기, 수박, 고구마싹 같은 모종을 한 두 포기씩 사서 들고 가는 모습으로 줄을 이었다. 게다가 도시에 살면서 부모님이나 형제가 살고 있는 고향집에 다니러 온 사람들까지 뒤섞이며 절정을 이룬다.
특성상 모종이라는 것이 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바삐 서둘면서도 한동안 소식이 궁금하던 사람들도 급한 틈을 타 활짝 웃으며 나중에 옥수수 먹으러 오라며 얼굴 한 번 보여주고 가는 것도 이맘때다. 모내기를 하는 논에 따라가면 논두렁에 이어진 들에는 보라색 붓꽃이 피어있었고 산기슭에 조팝꽃이 하얗게 피면 쉬는 날 없이 밭을 갈아 이랑을 만들고 온갖 밭작물을 심으시면 얼마 가지 않아 밭에서 요술처럼 싹이 돋고 꽃이 피었다. 평소 부지런하신 아버지가 계셔서 우리 집은 언제나 남보다 앞섰다.
살면서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 어디 모종 밖에 없을까. 학교 갔다 오면 늘 숙제부터 하고 놀아라, 장마철이 오기 전에 집 안팎을 단속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이부자리부터 새로 꿰매고 그렇게 부지런 하신 부모님들께서 심화를 끓이시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내 결혼이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선 자리를 마다하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딸을 보며 달래기도 하시고 야단을 치시기도 하지만 허사였다.
서로 날카로워 가고 있을 무렵 무슨 날인지 콩나물을 안치기 위해 소반위에 콩을 한 줌씩 놓고 이리저리 굴리며 잘 자라날 것 같은 콩을 고르시며 혼잣말을 하셨다. ‘세상에 중한 일이 자식 농사인데 늦어지면 기르는 사람도 힘들고 자라는 아이도 어렵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망종이 돌아오는데, 망종 지나면 풀뿌리를 다 끊어져 농사를 망친다고 하는데...’ 결국 나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아이 또래 엄마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았다.
요즘은 졸업 후에 또 취업을 해서 어느 정도 안정돼 결혼을 생각하게 되면 보통 삼십을 넘어 사십대에 이르게 된다. 그야말로 자식 농사 제대로 지을 때를 놓치는 셈이다. 이렇게 걱정스러울 정도로 결혼연령이 늦어지는 이유로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하는 풍조도 원인이 되겠지만 그나마 결혼을 하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지나치게 요구되는 결혼비용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짚어보고자 하는 것은 화려한 결혼식이 아니라 단란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서로의 사랑과 이해가 무엇보다 우선한다. 거기에 자신들의 모습을 빼 닮은 아이들을 기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