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 특히 이탈리아인들은 인간성을 되찾은 르네상스시대 거리에 등장한 카페가 사람들의 상상과 영감을 자극해 인류사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믿는다. 물론 카페의 식탁 위에는 커피가 자리 잡았다. 현대 들어 한국에서도 인문적 소양을 키우고, 문화적 환경을 조성하는데 커피가 1등공신이라는 평가가 커피매니아를 넘어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하긴 지난해 20세 이상 한국인들은 1인당 평균 338잔의 커피를 마셨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 같은 수치는 5년 전보다 131잔이 늘어난 것으로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폭발적 증가세다. 거리를 나서면 건물 하나 건너 한 개꼴로 고급커피점이 자리 잡았다. 등산로 꼭대기와 후미진 공원, 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커피자판기가 버티고 있다. 가히 커피공화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커피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면서 건강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의료전문가를 자임하는 이들이 쏟아내는 연구결과가 심장병 등 각종 질환을 치료(?)하는 긍정적 기능부터 B급 발암물질이라는 부정적 기능까지 망라돼 혼란스럽다. 오늘도 외신에는 미국의 의료연구팀을 인용해 ‘커피 2잔(8온스 컵)은 심장질환을 예방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커피에 포함된 항산화물이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예방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H대 연구팀은 “애주가를 조사한 결과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간 효소수(GGT)가 낮았고 지방간도 적었다”는 주장을 내놨다. 또 국내 굴지의 병원 건강의학센터 관계자는 “커피는 한때 췌장암과 방광암 등의 강력한 위험인자로 거론됐지만 증거부족으로 논란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반면 국내 A대 관계자는 “40대 이상 4천명을 조사한 결과 커피를 하루 3잔 이상 마시면 골다공증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으며,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는 역효과가 있다는 조사도 뒤따른다. 또 커피에 섞인 화학물질이 인간이 아닌 동물실험에서 발암물질로 드러났다는 주장도 사라지지않고 있다.
하여튼 커피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의료전문가를 비롯해 커피를 연구한 모든 의료진의 공통된 의견은 적당량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고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샤를르 모리스 탈레방의 커피에 대한 소회다. 이처럼 강렬한 커피의 유혹 속에 오늘 마신 커피의 잔 수를 헤아려 본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