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에게는 ‘한국의 대표적 지성(知性)’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 대표지성답게 직업도 다양하다. 교수, 행정가, 언론인, 평론가, 수필가 등 그저 인문학적 토양이 필요한 직업이 있다면 대부분 연관성을 갖는다.
특히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70대의 나이까지 통찰력을 바탕으로 탄탄한 논리로 무장된 글을 썼다. 글은 빼어난 이성을 자랑했지만 차가웠다.
그런 그의 글이 따뜻해지더니 앞세워진 논리로 인해 외면당했던 감성이 나타났다. 70대 중반, 애지중지하던 딸이 암에 걸렸다. “딸이 죽어간다”는 사실 앞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철저한 무력감 속에 절대자인 신(神)에게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마음속 변화를 책으로 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제목은 책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16세기 인물인 마르틴 루터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률가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모범생이었다. 그는 어느 날 집에서 대학으로 돌아가던 벌판에서 무시무시한 벼락을 맞았다. 땅에 엎어져 두려움 속에 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던 루터는 “살아날 경우 평생 신을 섬기겠노라” 약속한다. 루터는 그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가톨릭 구체제를 몰락시키는 95개조의 반박문으로 현대 기독교의 근간을 마련했다. 벌판에서 그는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은 것이다.
썩어가던 한국불교를 바로세우고, 맑은 선풍을 만든 효봉스님은 출가가 늦었다.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6년간 법관생활을 했던 효봉스님은 출가를 할 필요를 못느끼는 엘리트였다. 그런 그에게 스님이 될 수밖에 없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자신의 판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형수가 뒤늦게 무죄임이 밝혀지자 가책과 무상에 시달리다 승복을 입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개인뿐 아니라 역사의 발전에도 순기능을 한다. 루터가 없었으면 종교개혁도 한없이 늦어졌을 것이고, 효봉스님이 없었으면 한국불교의 청정성을 되찾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여정을 지나다보면 인지여부와 상관없이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다만 터닝포인트에 민감한 사람들이 인생을 기름지게 한다.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성실한 고민이 인생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우리는 벌써 2012년의 절반을 살아냈다. 반환점(Turning point)을 돌며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등에 대한 소심한 결의를 다져본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