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종자 관련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룬 다큐멘터리를 2부에 걸쳐 방영한 바 있다. 자동차나 반도체산업 못지않게 다음 세대의 미래 산업으로 종자 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세계는 지금 자국의 종자뿐 아니라 지구상의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바야흐로 총성 없는 종자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왜냐하면 종자는 우리의 먹거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세계 종자시장은 2010년에 698억 달러에 불과하지만 10년 후인 2020년에는 1천650억 달러로 2배 이상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종자 시장은 미국의 몬산토, 듀폰, 스위스 신젠타 등 세계 10대 다국적 종자기업들이 70%가량을 장악하고 있으며 몬산토 하나에서도 매년 10억 달러 이상을 연구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1996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1∼3위 종묘업체가 모두 외국 업체로 넘어가면서 국내업체들이 가지고 있던 종자권리까지 이전돼 외국 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의 절반 정도가 외국 업체의 종자로 심어졌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한 이후 종자로열티로 2002년 13억원에서 2010년에는 218억8천만원을 지급해 왔고,
외국기업 국내 점유율 50%육박
더구나 올해 1월부터는 모든 작물이 품종보호대상작물로 지정됨에 따라 로열티 지불 부담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모님이 뼈 빠지게 농사져 번 돈을 ‘로열티’라는 명목으로 고스란히 해외로 넘겨주게 될지도 모르는 판국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이렇다 할 자원 하나 없이 20년도 채 되지 않아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 대한민국으로 우뚝 서있지 않은가. 우리 정부는 종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종자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농촌진흥청에서는 그동안 로열티에 대응한 우수한 국산 품종을 개발·보급하고자 장미, 국화, 난, 참다래, 딸기, 버섯 등 6개 작목에 대한 사업단을 만들어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중앙과 지방 농촌진흥기관에서 함께 힘을 쏟아 왔다. 그 결과, 로열티 문제에 가장 민감한 장미는 병에 강하고 다양한 색상을 가진 품종을 개발해 2005년 국산 품종 보급률 1%에서 2011년에는 22%로 확대시켰다. 이 추세라면 머지않아 50% 달성도 단기간에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딸기의 경우에 2000년 초까지만 해도 국산품종은 없고 모두 일본품종이었으나 국내 연구진의 노력으로 ‘설향’, ‘매향’ 등 일본산에 비해 우수한 국산 품종이 육종·보급됨에 따라 국산품종 보급률이 2002년 9.2%에서 2011년 72%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둬 로열티 문제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까지 왔다. 버섯도 국산 품종을 육성해 맞춤형 보급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단기간 내에 신품종을 보급해 양송이 신품종 ‘새아’의 경우 보급률이 2010년 4%에서 2011년 23.1%라는 훌륭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더욱이 참다래의 경우는 ‘제시골드’, ‘한라골드’를 중국에 수출해 이제는 오히려 해외로부터 로열티를 받아오는 효자 품목이 됐다.
농림부 ‘골든시드 프로젝트’ 추진
하지만 우리나라의 종자 산업은 아직 초기단계이다. 몇몇 품목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국산화율이 저조한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올해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약 4천900여억원을 투입하는 ‘골든시드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해 차후 종자선진국 대열에 오르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정부의 비중 있는 관심과 종자업계의 성숙한 기술이 합쳐진다면 우리나라 종자산업의 앞날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를 제패했지만 농산업분야에서는 종자산업이 반도체산업을 추월할 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연구의 효시인 우장춘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훌륭한 후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