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부자(富者) 노인이 수명이 다해 죽음을 눈앞에 뒀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외국에서 공부중이라 재산을 물려줄 핏줄이 없었다. 집에는 온갖 대소사를 도맡아 온 우두머리 종이 있었으나 자칫 이 종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길 판이었다. 고민하던 노인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둔다. 유언의 내용은 “모든 재산은 우두머리 종에게 물려준다. 아들에게는 재산 중 오직 하나만 가질 권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급히 귀국한 아들은 허탈했다. 아버지의 죽음도 슬펐지만, 모든 재산은 종에게 넘어가고, 자신은 오직 하나의 권리만을 물려받은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방황하던 아들은 마을의 현자(賢者)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현자를 만나고 나온 아들의 얼굴은 환해졌고, 아버지의 슬기로운 부정(父情)에 눈시울을 적셨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오직 하나의 권리로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종을 갖는다. 집, 과수원, 땅, 보석 등등의 모든 것을 가진 종을 갖는 것이야말로 아버지의 재산을 올곧이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탈무드에서 배웠는지 우리나라 재벌들은 오직 1%의 지분으로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새우같은 지분으로 고래같은 그룹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은 환상적인 ‘환상형 순환출자구조’ 덕이다. 쉽게 말하면 재벌 총수는 핵심 A기업의 최소한의 지배주를 확보하고, 그 A기업은 B기업에 출자해 경영권을 확보한다. 또 B기업은 C기업의 경영권을 사는 방식인데 이런 구조라면 수백개 기업도 거느릴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재벌 43곳의 총수일가족 지분률은 4.17%에 불과하다. 특히 삼성, 현대자동차 등 상위 10대 재벌의 총수지분률은 1%이하인 0.94%라고 한다. 1%도 안되는 지분으로 “정권은 유한하되 재벌은 영원하다”는 대한민국을 호령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탈무드의 내용과 재벌들의 속성은 출발부터가 다르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아들은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해 ‘고래같은 권리를 찾기 위한 새우같은 지혜’를 발휘했다. 반면 재벌은 아무리 경영적 측면을 고려해도 ‘새우 같은 권리로 고래 같은 기업’을 차지하고 앉은 것이다.
국민들은 죄 없는 재벌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이 가진 장점이 있음도 인정한다. 이런 전제아래 가진 만큼 행사하고, 가진 만큼 세금내길 기대할 뿐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