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옛 삼남길을 찾아 사람들이 걷고 싶은 새로운 삼남 길을 만들고 있다…조선시대에 길은 사람이 다니는 소통의 길이었고 물류가 흐르는 유통로였으며지식 습득을 위한 여정이자 전파의 길이기도했다.
요사이 삼남 길 걷는 재미에 빠져있다. 삼남 길은 조선시대 한양에서 전국으로 뻗어져 나간 9대로의 하나이다. 삼남 길은 한양에서 시작해 수원, 화성, 오산과 충청도를 지나 전라도 삼례까지 이어진다. 길은 삼례에서 갈라져 한쪽 길은 경상도 통영까지, 다른 한쪽 길은 해남을 거쳐 제주까지 연결된다. 삼남 길은 조선왕조 통치이념을 확립한 정도전과 조선시대 최고의 실학사상가인 정약용이 유배 갔던 역사의 길이다. 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올랐던 길이고 암행어사가 돼 춘향이를 찾아 고향으로 내려간 문학의 길이기도 하다. 혹자는 조선시대도 아닌 지금 웬 삼남 길이냐고 궁금해 할 것이다. 지금 삼남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경기도가 옛 삼남 길을 찾아 사람들이 걷고 싶은 새로운 삼남 길을 만들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선시대 길은 사람이 다니는 소통의 길이었고, 물류가 흐르는 유통로였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고 그 지식을 전파한 길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연행 길을 떠났던 연암 박지원은 의주로를 따라 중국에 다녀온 후 자기가 보고 겪었던 일을 정리해 책으로 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열하일기’이다. 박지원은 이 글에서 수레와 말과 배 이야기를 꺼내며 조선이 수레와 말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음을 탄식했다. 박지원을 비롯해 박제가 등의 북학파 실학자들이 청나라, 아니 그 너머의 서양문물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박지원은 그 중에서도 수레와 말과 배가 서양문물의 핵심이었다고 판단했다. 아마도 박지원은 한양에서 중국대륙으로 이어진 수천㎞의 연행로를 걸으며 부지런히 물산이 오고 가는 길이야말로 근대 물질문명의 혈맥(血脈)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고속도로와 철도가 한국의 근대화에 얼마나 크게 이바지했는지는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니 박지원의 그러한 생각은 실로 탁견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박지원에게 길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길이기도 했다. 박지원은 선비와 장사꾼을 가리지 않고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이를 기록했다. 박지원이 걸었던 길은 물류가 오가는 유통로이자 사람과 사람이 오가는 소셜 네트워크이기도 했던 것이다.
길은 많은 이들의 인생이 묻혀 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이 있는 곳이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에서는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떠돌아야 하는 주인공의 운명이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그 뿐인가. 박목월의 시 ‘나그네’에 나오는 나그네는 술 익는 마을을 뒤로 한 채 수백리 이어진 외줄기 길을 걷는다. 술이란 것이 한 자리에서 차분히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그와 대비된 나그네의 팔자란 어딘지 모르게 좀 서글퍼 보이는 구석이 있다. 안정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길 위를 떠도는 삶이란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길을 걷다보면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인생과 체취가 느껴진다. 그래서 길은 걷는 이를 사색하게도 만든다. 작년에 일본 교토에 있는 ‘철학자의 길’을 걸을 때는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면서 스스로를 돌아다보게 해줬다.
길을 오간다는 것은 정신적인 풍요도 가져다주지만, 부지런히 몸을 놀려 걷다보면 건강도 가져다준다. 걷기는 등산이나 달리기와 달리 비싼 장비가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스스로 운동 강도를 조절하기 쉽고 신체에도 큰 무리가 가지 않기 때문에 생활체육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운동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국가 차원에서 의료비 감소, 평균수명 증가, 생산성 향상 등에서 비롯되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한다. 곧 경기도 구간의 삼남 길 일부가 개통된다. 역사를 생각하게 해주고 건강도 가져다 주는 이 길을 많은 이들이 걸으며 행복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