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편찬한 사기(史記)의 소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진(蘇秦)은 싸움으로 지새던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입만 갖고 돌아다니며 6개국의 재상이 됐다. 그는 당시 초강대국인 진나라에 맞서 나머지 6개국의 연합을 꾀했다. 소위 합종책이다. 그가 제일 먼저 한나라에 들려 혜선왕을 만났다. 그리고 현란한 입을 놀려 한나라를 합종책에 동의하는 첫 나라로 끌어들인다. 소진은 말했다. “한나라는 국토가 900여리에 병사는 수만명에 이르는데 진나라에 허리를 굽히면 천하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또 한번 양보하면 계속해서 양보해야 하기에 나라 보존이 힘들다.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가 돼서는 안된다(鷄口牛後)”고.
요즘 프리미어리거 박지성선수의 이적을 놓고 시끄럽다. 박지성의 고향인 수원에서는 더욱 갑론을박이 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제일이라는 명문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이름도 생소한 ‘퀸즈파크 레인저스(QPR)’라는 팀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QPR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17위로 잔류했으니 잔류팀 가운데 꼴찌다. 따라서 팬들은 “최고팀에서 꼴찌팀으로 이적한 것”으로 받아들여 충격을 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고사가 바로 계구우후(鷄口牛後)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7년간 선수생활을 이어왔다. 입단초기, “아시아 마케팅을 위한 ‘티셔츠 팔이용’ 선수”라는 비아냥은 그의 대단한 활약에 묻혔다. 세계클럽대항전 결승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였고, 맨유의 주요 경기에 ‘2개의 심장’을 갖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맨유팬들은 환호했고, 우리가 듣기에는 민망하지만 박지성의 응원가인 ‘개고기송’은 맨유의 홈그라운드인 올드트래포드를 울려 퍼졌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박지성에게 이상기류가 생겨났다. 그보다 나이많은 노장들은 중용되고, 신진 선수들도 계속 치고 올라왔다. 박지성의 설 자리는 점점 줄었고, 경기 출장도 부쩍 줄어들었다. 맨유에서 은퇴하겠다는 충성맹세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박지성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다. 과연 닭 부리가 될 것인가, 소꼬리가 될 것인가.
박지성은 명분과 체면을 버리고 도전에 나섰다. 벤치를 지키는 소꼬리보다는 그라운드를 포효하는 닭 부리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저 벤치만 지키고 있어도 엄청난 수입과 광고, 그리고 국내 복귀후 수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었다. 그러나 박지성은 안주하지 않고, 위험이 도사리는 도전에 나섰다. 박지성의 도전이 또하나의 영웅담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