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에게서 SNS를 통해 장문을 하나 받았다. SNS를 떠돌고 있는 ‘병아리인줄 알고 살았던 독수리이야기’ 가운데 가장 공감되는 깔끔한 글이었다.
이야기를 간추리고, 재구성하면 이렇다. 닭의 무리 속에 어울리던 ‘어떤 닭’이 푸른 하늘을 고고히 비행하는 독수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독수리를 보는 순간 ‘어떤 닭’은 갑자기 날갯죽지에 힘이 들어가고 땅을 박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동료 닭이 “섣불리 독수리를 따라하려다가 몸을 망치는 수가 있어”라며 주저앉혔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 닭들과 노닐던 ‘어떤 닭’ 앞에 다시 독수리가 나타났다. 모든 동물을 제압할 듯한 눈빛과 근엄한 자태, 그리고 나뭇가지를 움켜진 옹골진 다리는 ‘어떤 닭’이 항상 꿈속에서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이번에도 ‘어떤 닭’은 숨겨진 본능이 일깨우는 감각에 따라 날개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날개를 퍼덕거리려 했으나 역시 옆 자리의 친구가 “아서라, 다친다”라고 말리는 통에 또다시 닭장 안에서 졸고 있는 무리 속으로 돌아갔다.
또다시 하릴없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어떤 닭’은 동료들과 어울려 맑은 물이 흐르는 이웃 냇가로 놀러갔다. 그리고 동네방네 소문난 냇물을 맛보기위해 고개를 숙이던 ‘어떤 닭’은 깜짝 놀랐다. 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과거 자신이 꿈꾸던 바로 독수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어떤 닭’은 이번에는 다리에 힘을 주고 확신 속에 날갯죽지를 흔들었으나 날개가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어느덧 ‘어떤 닭’은 늙어있었고 자신이 독수리임을 확인했지만 이제는 독수리처럼 창공을 누빌 힘이 없었다.
선배들에게는 면구스런 표현이지만 20여년의 짧지 않은 사회생활 속에서 가끔 ‘어떤 닭’을 만났다. 그중에는 자신이 독수리임을 재빨리 알아채고 푸른 창공으로 한없이 날아간 ‘어떤 닭’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떤 닭’들은 자신이 독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아직도 닭무리 속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되돌아 짚어보면 창공으로 날아간 ‘어떤 닭’에게는 좋은 동료나 좋은 선배가 있었다. 알에서 깨어나려는 ‘어떤 닭’의 몸부림에 호응, 밖에서 알을 쪼아주는 그런 선배나 동료 말이다. 반면 아직도 닭장 안에서 졸고 있는 ‘어떤 닭’에게는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값싼 위로를 주는 동료가 있었다. 또 알에서 깨려는 도전을 날개로 감싸주기만 하는 ‘마음씨 좋은’ 선배만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푸르디푸른 하늘을 휘돌 그 많은 독수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