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대서(大暑)였다. 대서란 말 그대로 이제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인 때라고 해야겠다. 삼복도 소서를 지나 대서를 전후로 지내게 돼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나는 시절이다.
그러나 요즘은 더위도 그다지 극성을 부리지 못한다. 이상기온으로 겨울이 길다가 갑자기 여름으로 닥쳐 봄을 느껴야 할 때 더워 더워하다 정작 복지경이 되니 장마에 한풀 꺾인 더위가 제대로 행세를 못하는 바람에 그래도 지금까지는 수월하게 지나간 편이다. 게다가 요즘은 가정에서도 단열도 잘 된 집에 에어컨으로 시원한 여름을 보낸다.
그러나 앞으로 어떤 국면에 접어들지 예측할 수는 없다. 무분별한 에너지 사용과 이에 따른 탄소배출로 인한 환경 파괴는 우리를 가로막는 어쩌면 더위보다 피하기 힘든 과제이다. 예전에는 여름이면 의례히 땀을 흘리며 더위를 견디느라 부채를 들고 살았고 선풍기 한 대를 놓고 온 가족이 서로 자기에게 바람이 오도록 하려고 눈치작전을 펴기도 하고 어른이 계신 집에서는 곁에 바짝 붙어 앉기도 했다.
그래도 밤이면 쑥으로 모깃불을 피우고 토실토실한 옥수수를 먹으며 하모니카 부는 흉내를 내기도 하면서 별구경을 하다 영롱하게 빛나는 별이 와수수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시원한 상상을 하며 무릎에서 잠이 들던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준 것도 더위가 준 선물이다. 장정들은 밤에 횃불을 만들어 가재를 잡아 밖에 걸린 화덕에 애호박이며 풋고추를 숭숭 썰어 넣고 한 솥 끓이다 수제비를 뜯어 넣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애 어른이 다 모여들었다. 왁자한 웃음소리에 깨어 후후 불며 먹을 때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뜨거운 국물에서 수제비를 골라 먹으면서도 더운 줄을 몰랐다.
그러면서도 그때는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지만 먹을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거라는 말씀 때문에 억지로 참아가며 어른들 틈에 끼어 밤이 깊어갔다. 물론 때가 되면 물러나는 더위처럼 나중에는 저절로 알게 됐지만…. 거무스름하게 생긴 가재가 솥에서 끓는 동안 점점 빨개지는 게 신기해서 연기 나는 화덕 옆에서 눈물을 닦으면서도 떠나지를 못했다.
지금은 피서라면 산이나 물가로 가는 것으로 인식이 됐지만 생각해 보면 더위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윗대 어른들께서는 삼복에는 복달임도 하면서 더위와 더불어 힘든 농사일을 하고 그러다 더위에 지치는 틈틈이 이런 놀이를 했던 것으로 안다. 천렵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휴식과 친선이 덤으로 주어지는….
그렇다면 무조건 더위를 피하고 보자는 궁리보다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더위와 더불어 살며 잠시 더위를 잊을 놀이를 만들어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 아닐까? 그렇게 지나다 보면 더위는 저절로 물러간다. 함께 지내려고 노력한 우리에게 공짜가 아닌 풍요로운 가을을 가져다주면서.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이사 ▲플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