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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장칼럼]김학규"바캉스 斷想(단상)"

 

바캉스는 ‘空(공)’을 내포한 시간,흥청망청 소비하기 보다는‘비움’과 ‘채움’이 있는재충전의 시간이어야 한다.

바캉스(vacances)는 본래 법정의 휴정기간을 지칭하는 프랑스어로 시민사회가 발전하면서 근로자들의 휴가, 학교의 방학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득권층만 누리던 휴식이 보통 사람들도 똑같이 누릴 수 있도록 제도화되면서 휴가철 대이동을 칭하는 그랑드 바캉스(grandes vacances)가 시민사회의 관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일만 하며 살던 보통 사람들에게 유급휴가제가 도입된 것은 100여년이 채 안된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으며 시민사회의 실현에 앞장섰던 프랑스에서도 정규직 근로자들의 2주 유급휴가가 법제화돼 시행된 것은 1936년이었다. 그해 프랑스 전역은 가족과 함께 그랑드 바캉스를 즐기는 근로자들의 자전거 물결로 뒤덮였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승용차나 기차 여행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휴가에 백남준 아트센터를 찾아보고 루소의 ‘에밀’을 읽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백남준 탄생 80주년의 해이면서 장 자크 루소의 탄생 300주년의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 피서지에서 또 다른 번잡함 속에 자신을 내던지기 보단 예부터 물 맑고 산 좋은 곳으로 탁월한 휴양지이기도 했던 용인을 다시 발견하고 이미 읽은 책을 새롭게 음미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호사가 아닐까.

백남준 아트센터는 용인의 상갈동에 위치해 있다. 전 세계를 유랑하며 유목민으로 살았던 백남준은 용인에 지어질 자신의 미술관의 명칭을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으로 명명해달라고 했다. 사후에라도 모국에 머물고 싶어 한 것이리라. 서구 예술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대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내가 사는 곳 지척에 있다니 나는 참 행복하다. 그곳에서 세기를 앞서간 선구적인 사상과 상상력을 만나고, 그 자유롭고 유쾌한 영혼과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이라는 백남준 특별전도 감상해야겠다. 8월부터 달나라 백남준, 로봇 오페라,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 등 초·중·고교생 대상의 체험교육프로그램 행사도 잇달아 열린다고 한다.

책은 루소의 ‘에밀’을 다시 정독하려 한다. 자연을 최상의 교사로 삼아 자연을 따르는 방식의 교육을 설파하고, 특히 체육 교육의 중요성을 조목조목 논하는 루소의 탁견을 다시 새겨야겠다. 과도한 입시경쟁이 분명히 비정상적임을 알면서도 아무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을 반성하고 대안을 모색하게 할 것이다. 루소는 태어난 지 9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10세부터는 아버지와도 생이별을 한 후 방랑자의 삶을 살았지만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대사상가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출간 후 당대 어머니들의 육아 바이블로 자리 잡았고, 철학자 칸트도 매일 시계처럼 정확하게 산책하는 습관을 잊을 정도로 푹 빠졌다는 ‘에밀’을 읽으며 몇 백 년의 시공을 넘어 많은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여름 해외여행을 즐기려고 떠나는 한국인 피서객들이 5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운 때에도 아랑곳없이 흥청망청 소비를 즐기는 피서객들이 사회의 양극화를 더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게 된다. 물론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은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건전한 휴가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바캉스 문화는 부유층의 향락적인 소비문화를 흉내 내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자들은 휴가의 본질이 퇴색되지 않는 건전한 바캉스 문화가 자리 잡도록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바캉스는 ‘공(空)’을 내포한 특별한 시간이다. 그해를 시작할 때의 비전과 목표를 재점검하며 하반기를 준비하는 성숙한 시간, ‘비움’과 ‘채움’이 있는 재충전의 시간이어야 한다.

출범 2년을 넘긴 민선5기는 이제 전환점을 돌았다. 모두 함께 행복한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 더 열심히 일하고 더욱 협력해야 할 때다. 용인시 2천여 공직자들이 황금 같은 그랑드 바캉스를 무의미하게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대를 앞서가는 미래 예측력을 다지고 현재에 대해 성찰하는 풍요로운 시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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