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가정 교과서인 탈무드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인생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요약하면 코를 흘리는 어린아이, 수염이 난 어린아이, 주름살이 패인 어린아이 등이다. 외모는 달라지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성정을 버리기는 힘들다는 비유도 섞여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어른답게 사는 것일까.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많은 사례에서 배운다. 거창하게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 주변만 돌아봐도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장애인과 어린아이를 성폭행하는 천인공로할 범죄를 저지르고 수갑을 찬 어른들을 볼 때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또 우리 아이, 우리 가정만 무사하면 사회의 불의와 잘못에 눈감아 버리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용기가 없는 시대에 '어른'들이 살고 있다.
16살 어린 고등학생의 잘못을 나무라던 어른이 고교생들에게 맞아 사망했다. 숨진 김씨는 가족들과 산책을 나왔다가 컵라면을 먹으며 길거리에 침을 뱉는 어린 학생들을 나무랬다. 이어 몸싸움으로 이어지면서 머리를 다친 것이 치명상이 됐다. 현장의 CCTV가 없는 상황에서 고교생들을 가해자로 일방적 매도를 할 의도는 없다. 하지만 우리 동네에서도 편의점이나 골목길에 모여 가래에 가까운 침을 내뱉는 볼쌍사나운 장면은 흔히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이러한 장면에 어린 학생들을 훈게하는 어른들을 보기가 힘든 세상이다. 하기는 술먹고 행패를 부리는 손녀를 훈계하던 할머니가 손녀로부터 흉기에 70여 차례나 찔려 살해당하는 일이 연천에서 벌어졌으니 말을 잇기가 힘들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민족의 효문화와 밥상머리교육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고리타분한 세상인 것이다. 어린학생들을 훈계하던 어른들이 망신에 가까운 곤욕을 치루고, 사회질서나 예절을 말하는 어른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다보니 “나와 내 가족만 아니면” 외면하고 피해가는게 일상이다.
이러다보니 우리사회에서 어른다운 어른들이 사라졌다. 여기에는 소위 왜곡된 청소년 인권과 기계적인 사법체계도 한 몫하고 있다. 보호해야 할 인권이 구별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대다수 인권의 산물인 전래적 사회질서가 위협받고 있다. 또 시비가 붙으면 우리사회가 인정하는 관례적 질서를 무시한 채 사법절차만을 강조하는 법체계가 어른다운 어른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불의를 묵과하는 사회는 더욱 위험한 세상으로 추락할 뿐이다. 참으로 어른답게 사는게 힘든 세상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