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면
등이 먼저 신호를 보내오고는 했다
미워져서
얄미워져서
한 번은 너를 끙, 이라고 바꾸어 불러보려고
마음먹기도 해 보았지만
언제나 대나무처럼 짱짱한 이름을 지녔던
등이여
마침내 돌아서 가는 너의 뒤에서
정면이 되어 바라다보이던
단호한 표정의 맨 얼굴이여
-정윤천 시집 십만 년의 사랑- 2011년 문학동네
등만큼 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게 또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의 등을 오래 바라본 적이 참 오래 되었다. 안녕 잘 가요, 인사하고 동시에 돌아서는 쉽고 짧은 헤어짐, 자동차의 보급으로 사람의 등보다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더 많이 보고 사는 세상이다. 서로 먼저 가라고 권하다가 그럼 동시에 가는 거다, 그런 청보리같은 풍경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이별의 의식은 갈수록 짧아져 간다. 나는 <등>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밤하늘 골목 끝까지 나가서 별의 등을 바라본다. 한 별은 별안간 어디 문상이라도 가는 지 잰등으로 흐른다. 어떤 두 별은 허리를 감싸 안고 미끄러지듯 산 너머 숲으로 사라진다. 등과 등 사이 간격이 없다.
/박홍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