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활짝 핀 꽃이 바람에 사뿐사뿐 날리는 모습이 곱디곱다.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들이댄다.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라 했는데 여름 초입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지금은 마치 제 철 인양 피어있다.
오월 장미가 팔월에도 피고 개나리가 가을에도 피어있는 것을 보면 나무가 개화시기를 읽지 못할 정도로 지구의 온도변화가 극심한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이다. 올해의 기상변화를 봐도 그렇다. 봄 가뭄이 극심하여 물 부족으로 인한 피해가 여기저기서 속출했다.
강은 바닥을 드러냈고 강 밑의 어패류는 폐사했으며 제때 모내기며 파종을 못한 농가들이 속을 태웠다. 산간지방은 식수조차 구하지 못해 급수를 받아야 했고 물줄기를 찾기 위해 관정을 뚫는 등 많은 재정과 인력을 낭비했다.
짧은 장마와 37-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그리고 또다시 찾아온 가뭄으로 밭작물들을 타들어가고 야채 등 물가는 크게 올랐다. 강은 녹조 현상으로 식수까지 위협을 받고 온 국민을 찜통 속으로 밀어 넣던 열기는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았다. 입추를 넘기면서 더위가 물러서는 듯하더니 이젠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생기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400㎜가 넘는 비로 농경지가 침수되고 가옥이 파괴되는 등 인명피해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벌써 십 여 년이 훌쩍 넘긴 이야기이지만 지리산 뱀사골 사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밤 우리는 뱀사골에 있었다. 양동이로 퍼 붓는 듯 밤새 내리는 비와 사정없이 내리치는 벼락 그리고 계곡을 향해 굴러 내리던 집채만한 바위 등 그날 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계곡에서 야영을 하던 우리 세 가족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자 건너편 상가에 가서 비가 오면 괜찮겠냐고 물어보았고 상인은 본인이 15년이 넘게 장사를 했는데 우리가 텐트를 친 곳까지 물이 불어난 적도 없으며 혹시 물이 차오르면 헬기가 뜰 것이니 아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안심을 했다.
밤 열시가 가까워 올 무렵 비는 무섭게 내렸고 우리는 긴장을 하고 밖을 주시하고 있었다. 갑가지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나더니 텐트 가까이까지 허연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철수, 철수”를 외치며 아이들만 챙겨서 산으로 산으로 기어올랐다. 앞에 절벽이 있어 못 오를 때까지 정신없이 올라갔다. 너무 급해서 신발도 못 신은 사람도 있었고 어린 딸아이가 힘들어서 더는 못가겠다는 말에 안 가면 죽는다고 호통을 치면서 올랐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는 밤새 내렸고 절벽에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절벽이 무너져 내릴 듯한 공포에 밤새 떨었다. 날이 밝고 비가 그쳐 우리가 야영하던 곳을 내려와 보니 텐트며 살림살이는 모두 떠내려가고 찢겨져 나무에 걸친 담요가 우리가 머물렀던 흔적을 표시하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 일행은 목숨을 건졌고 119의 도움을 받아 계곡을 무사히 건너 왔지만 300mm 이상 쏟아진 게릴라성 집중 폭우에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지리산을 떠올리면 정말이지 아찔하다.
올해도 집중호우가 많을 거라는 예보가 있다. 잠깐의 방심과 안이한 생각이 큰 사고로 이어지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내 집 주위와 평소에 한번쯤 위험하다고 여겼던 곳을 다시 한 번 살펴 비 피해가 없도록 준비해야 함은 물론 지구 온난화를 막기위한 각자의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리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