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도심지를 말끔하게 청소해준 오후,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은 필자는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비교적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이지만 도심지는 한산했고, 하늘은 여름날의 더위를 물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물리치료를 잘 받아서일까? 바람은 뼛속까지 시원하게 해주었다.
기분까지 상쾌해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리어카 위에 옥수수와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가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쪼그려 앉아 상추와 오이를 파시고 계셨다.
필자의 어머니는 비가 그친 날이면 논으로 밭으로 달려 나가셨다. 기나긴 여름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서야 지친 몸을 이끄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시골에서 농사일로 삭신을 쑤시던 나날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의 삶이 잠시 오버랩되었고, 할머니에게서 상추 2천 원 어치를 사고 다시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시선을 돌려보니 할머니는 허수아비처럼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상추와 토마토를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계셨다. 타야만 하는 버스가 지나쳐 갔다. 하지만 필자는 할머니 옆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한 시간이나 되었을까? 가야 할 길의 여정을 놓치고 바라본 할머니의 모습은 사뭇 진진해 보였으나 이날 할머니가 가져오신 상추와 고추, 토마토는 모두 다해봐야 5만 원 어치도 채 안 되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할머니와 채소들을 번갈아 바라보고만 있을 뿐, 한 시간이 지나도 상추와 고추를 사가는 시민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걸 다 사면 어떨까 싶었지만 필자가 가진 돈은 달랑 1만 5천이었다. 아내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필자는 돈을 가지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잠시 망설이다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5만 원 어치 모두를 사주고 싶었던 것이다.
80세가 훨씬 넘으셨을 법한 검게 그을린 할머님, 오래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얼굴이 또다시 떠올랐고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상념을 가졌다.
할머니에게 달려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자마자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비가와도 항상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어야만 하는 허수아비, 할머니가 비에 흠뻑 젖으시면 어떨까 싶어 걱정되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고 비만 요란하게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를 때리고 있었다. 할머니가 허수아비처럼 비를 맞지 않으신 것에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남아 있는 채소들을 팔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실 거라는 생각에 비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필자의 유년 시절,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시골동네를 돌며 행상을 하셨다. 어머니는 밤늦은 시간에 땀으로 축축해진 몸을 이끄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좀 더 좋은 옷을 입히려고 했던 어머니, 돌아오는 25일이면 어머니의 23주기다.
의학이 발달하고 평균수명이 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거리에서 많은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흔히들 늙어서도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들 하는데, 거리에서는 아름답게 늙어가는 할머니도 만날 수 있지만 허리가 활처럼 굽은 보기 흉한(?) 할머니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면 필자는 가슴부터 저려온다. 이럴 때는 어느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까?
가난과 부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여러 거리에는 또 다른 할머니가 노점상으로 쭈그려 앉아 있을 것이다. 그날 오후, 필자는 아내와 산책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채소는 내가 살게.”라고.
거리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보듬어주고 싶다. 가난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허리를 편안하게 펴드리는 것, 그것은 이제는 든든하게 성장한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