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어두우셨던 아버지
늘그막엔 마을회관 확성기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세상에 어디 들을만한 소리가 있다냐
차라리 안 듣는 게 맘 편혀
물질을 나서기 전에 하신 말씀
댓돌 위에 놓인 장화가
두 귀를 반듯하게 세워 먼저 들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바다로 나가면
한없이 맑아지는 아버지의 귀
바다를 무덤으로 삼을란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어느 날
돌풍의 거대한 귓구멍 속
귓밥으로 가라앉았다
- 이종섶 시집 ‘물결무늬 손뼈 화석’/2012년/푸른사상
바닷가에 떠밀려온 소라 하나
내장을 다 비워
온몸으로 만든 커다란 귓속에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불었다
귀를 댈 때마다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쉬지 않고 들려주는 소리의 집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비가 됐을 때 더욱 선명하다. 바다를 삶의 자리이자 무덤으로 삼았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내장을 비운 소라 하나가 아버지의 소리를 들려주는 유일한 유품이 됐다는 한 편의 영상 같은 작품이다. 가족을 위한 아버지의 자리는 어쩌면 집이 아니라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삶의 바다였음을 애잔하게 보여준다. 사랑을 위해 사랑의 자리에 있지 않고 사랑 밖에서 사랑을 지켜온 아버지, 소라는 아버지의 침묵이 담긴 흔적이다. 이 시가 아버지의 귀를 노래하는 것은 아버지는 말하지 않고 듣기 때문이리라. 아버지가 되어보면 안다. 왜 오늘도 식솔(食率)을 위해 검푸른 바다로만 나가는지, 세파가 높을수록 입은 무거워지고 귀는 쫑긋해질 수 밖에 없는지 애비가 되어보니 알듯하다. 아, 그래 아비가 되어보니 그 분의 목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