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축제’인 런던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우리에게 3번의 기쁨을 준다. 금메달의 확정 순간, 마치 본인이 출전 선수 같은 착시의 순간의 쾌감을 통감하며, 금메달 선수의 역경을 TV에서 보는 순간에 자기의 삶에 동승하며 가슴 벅찬 동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3번째 기쁨은 시상식에서 금메달은 태극기를 중심으로 은, 동메달의 국기와 함께 애국가를 울리며 우리의 가슴을 아주 뿌듯한 감격과 환희의 승리감으로 안겨 준다.
아열대의 훈증기 속에 폭염의 기를 올리면서도 우리에게 승리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 대한민국 선수들의 열정은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희망과 한국인의 긍지감과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고취시켜 준다. 물론 그동안 노력한 선수들이 선전해 각 종목에 입상하는 것만도 박수를 칠 일이지만, 온 국민들이 열대아의 밤에 응원과 격려를 통해 선수가 얻은 금메달은 세가지의 기쁨을 ‘애국가’와 함께 감격의 13번의 태극기를 올림에 있다. 애국가! 한국인의 가슴을 벅차게 해 주며 대한민국을 하나로 맺어주는 단결의 서사시가 바로 애국가가 아닌가 한다. 이렇게 우리 가슴과 마음을 뜨겁게 해 준 애국가. 귀하는 지금까지 애국가를 4절까지 몇 번 정도 불렀으며, 애국가를 부를 때 빠르기를 어떻게 부르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행사장에서 형식적으로 무덤덤하게 또는 귀찮은 생각으로 임하지는 않았는지?
애국가를 바르게 부르자. 지금까지 연주되고 있는 애국가는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의도와는 다르게 Tempo가 Moderato 중에서도 느리게 또는 Andantino 정도의 ♩=78-84의 연주를 하고 있었다. 애국가는 이에 따라 한민족의 역사를 대변하듯 은은하며 애절하게 각종 의식이나 행사장에서 불려지고 있었으며, 4절까지 부르면서 국민들은 더욱 부르기를 외면한다. 애국가를 대한민국에 헌정하기 위해 안익태 선생의 미망인 ‘로리타 탈라베라’와 유족들이 경기도와 문화관광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필자가 연주회 후 좌담회 석상에서 개인적으로 안익태 선생과의 추억의 한 장면을 소개하게 돼 가족들에게 새로운 감흥을 줘 회고의 눈시울을 적신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고교시절인 1962년 안익태 선생의 2번째이자, 마지막 고국 방문인 수원의 서울대농과대학 대강당(당시 가장 좋은 연주홀)에서 안익태 선생 지방순회연주회가 열렸다. 마지막 공연무대에서 안익태 선생은 직접 지휘봉을 들고 애국가를 전 관객이 함께 불렀다. 그때 선생은 돌연히 화를 내며 양복상의를 벗고 애국가를 수차례 다시 부르게 했으나 여전히 관객들은 현재 우리가 부르고 있는 것과 같이 느리고 애절하게 노래했다.
안익태 선생은 역정과 함께 지휘봉을 꺾어 던졌다. 다시 관객들은 선생의 지휘에 맞춰 애국가를 10번도 더 불렀다. 마치 ‘한국환상곡’(Symphonic Fantasia KOREA)의 마지막 4번째 나오는 합창의 연주와 같이 목이 터 저라 감동에 젖어 애국가를 불렸다. 그리고 선생은 연설을 통해 본인이 다시 한국에 올 수 없을지라도 애국가는 바로 힘있고 활기차며 장엄하게 불러 달라는 당신의 소원을 역설했다. 아마 이때 안익태 선생의 열정적인 음악세계를 필자는 흠모하며 지휘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고 그때의 경험을 미망인에게 말씀을 드렸다. 그 순간 로리타 여사는 현재 스페인 집에 꺾어진 지휘봉이 5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1962년 수원에서 있었던 그 지휘봉이라고 말을 하며 회한(悔恨)의 눈시울을 적시며 애국가의 본질을 고인의 진정한 뜻으로 펼쳐 달라고 당부했다.
한국환상곡은 ‘30분36초’의 짧은 대서사시적인 교향적 환상곡으로 한국인의 역사를 잘 표현해 준 곡으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애국가는 1936년 작곡돼 1948년 대한민국 국가로 정식 채택돼 있다. 애국가의 Tempo를 Moderato 그대로 하며 89-92 정도의 빠르기로 불러 작곡가의 생전에 주창하던 본연의 작곡 정신을 살려 한국인의 기상이 솟아오르며 희망에 넘치는 연주가 될 수 있도록 음악계를 비롯한 사회적인 공감이 계속 이뤄져야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애국가 바르게 부르기운동’을 펼친 10여년의 세월은 올림픽에서의 애국가 연주의 템포에 많은 변화가 돼 힘찬 연주가 됨을 볼 때 회안의 벅차오르는 희열의 삶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