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세상의 기척을 다시 쓰다란 시인축구단 글발 시집에 수록
한 때 김중식 시인의 시가 우리의 가슴을 강타하고 우리 삶의 자세에 대해 깊은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과감한 시어들이 폭발적으로 우리를 뒤흔들고 시를 읽은 감동이 후폭풍처럼 우리에게 몰아쳐온 적이 있다. 우리가 먼 곳으로 왔다고 하지만 결국 삶으로 노를 저어 그 높은 곳에 이른 것도 아니고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아 권태로울 때가 있다. 궤도를 이탈하지 못했다는 것은 자발성이 부족하고 현실 속의 안주이다. 내가 다람쥐 쳇바퀴를 돌리듯 일상의 바퀴를 돌려가고 있을 때 그 모든 틀을 깨고 일상 밖으로 걸어 나간 사람은 끝없이 부럽기만 하다. 이탈한 자가 일탈한 자가 자유롭다는 것은 시인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우리는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길을 벗어나 우주미아가 된 위성처럼 떠돌지만 떠돌면서 숱하게 조우할 세상은 새로운 세상이다. 이탈과 일탈에 대한 보상처럼 새벽 같이 환하게 열려오는 새로운 우주다. 이탈로 이른 낙원인 것이다. 우리도 일탈하자 죄로 점철된 길을 벗어나 마음껏 자유롭게 그래서 문득 우리가 행복하다 느낄 때까지. /김왕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