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은 임기말에 ‘레임덕’이 찾아왔다. 시급을 요하는 국정현안을 쌓아놓고도 차기 대통령의 눈치보기에 일손을 내려놓은 각부처의 복지부동에 허송세월 해 왔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으니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갔다. 또 역대 대통령들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에는 당직을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대통령선거를 3개월여 남겨놓고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대선후보인 박근혜 후보가 2일 청와대에서 만난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두 사람이 독대한 것은 8개월 만이지만,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선 후보의 단독 회동은 10년 만이다. 2002년 4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회동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대선을 3개월 반가량 앞둔 시점에 이례적으로 ‘여권의 투톱’이 회동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 만하다. 더욱이 잇단 성폭행 사건 등으로 치안 불안이 팽배해지고, 태풍 피해와 성장세 둔화 등 경제적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단독 회동이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된다.
두 사람은 회동에서 주로 태풍피해 복구, 치안 대책, 민생경제 등 3가지 민생현안을 놓고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새누리당에 의하면 박 후보는 특히 100일간의 범국민 특별안전확립기간을 정해 민관 합동으로 반사회적 범죄 예방과 대책 수립에 나서줄 것을 제안했고, 이 대통령도 필요성에 공감했다. 박 후보는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약속한 반값 등록금, 0∼5세 양육수당 확대 문제에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대화가 민생현안에 집중됐다는 것은 그만큼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할 긴박한 상황이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이번 회동이 당의 화합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역대 대통령이 예외 없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유로 탈당했지만, 이 대통령은 끝까지 당적을 유지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한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대화가 민생현안에 집중됐다는 것은 현 국가 상황에 비춰 공감할 만하다. 하지만, 박 후보 쪽의 요청으로 이뤄졌다는 이번 회동이 국민의 시각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려면 새누리당이 문제 해결에 솔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이 여당 대선후보와 만났다면 야당 후보와도 못만날리 없다. 청와대 문을 개방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 남은 임기동안 국민이 바라는것이 무엇인가 헤아려 풀어 준다면 ‘레임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