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학생이 아니다
졸업한 지 오래됐다
당신은 노동자다 주민이다
시민이다 국민이다 아버지다
가정에서 존경받는 남편이고
학부모며 집주인이다
환자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모두다
아침이면 건강쎈터로 달려가 호흡을 측정하고
저녁이면 영어강습을 받으러 나간다
노동자가 아니기에 구조조정엔 찬성하지만
임금인상투쟁엔 머리띠 묶고 참석한다
집주인이기에 쓰레기매각장 건립엔 반대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 원전과 운하 건설은 찬성이다
한 사람의 시민이기에 광우병 소는 안되지만
농수산물 시장개방과 한미FTA는 찬성이다 /학부모로서
학교폭력은 안되지만, 한 남성으로
원조교제는 싫지 않다 사람이기에
소말리아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나고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에 보내는 쌀은 상호주의에 어긋나고
미군은 절대 철수하면 안된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인가?
-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2009년/창비
시는 이 세계에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누구이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어떤 곳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질문하는 자, 그 질문을 미학적으로 완성하는 자. 나는 누구인가. 경우와 시간과 장소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바뀌는 나를 나도 모른다. 얼핏 보면 일관성 없어 보이지만 내 삶의 기준은 ‘내 이익’. 옳지 못한 일에 격분하지만 내 편의에 따라 대강 눈 감고, 때로 적극적으로 불의에 동참하는 일도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불의라는 자각조차 없을 때. /박설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