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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한인숙"제가 많이 아파요"

 

“제가 많이 아파요. 서둘러 나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은행의 자동화기기에 붙어있는 문구이다. 월요일 오전 혼잡한 시간이라 줄을 서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 문구를 보고 화를 내는 사람보다는 피식 웃으며 ‘아, 기계가 고장 났구나’하면서 불편을 미소로 대신한다.

요즘은 입출금이나 공과금 등 대부분의 업무를 창구보다는 자동화 기기에서 많이 처리하다 보니 은행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고 직원들의 서비스도 예전보다는 좋아진 반면 서민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여전히 높고 어렵다. 많은 돈을 움직이고 예치하는 사람은 VIP고객으로 특별대우를 받지만 대출을 받기 위해 상담을 하다보면 대출자가 요구하거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용조회 등 준비된 서류에 체크하고 서명하라면 서명해야 한다. 확인하고 서명하는 부분이 선택이냐, 필수냐 물으면 의무적으로 동의해야만 다음사항이 진행된다고 한다.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을 고객의 선택에 따라 하는 것처럼 정해놓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확인하고 따져볼 겨를도 없이 직원의 안내에 따라 이름 쓰고 서명하기를 되풀이하고서야 그들이 정해주는 대출액과 대출 금리에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씩 하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화재보험이 만기돼 어느 보험사를 방문했다. 창구 직원과 노인이 실랑이를 한다. 중도에 보험을 해지하는데, 해지환급금이 터무니없이 적은데다 해지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아니다보니 준비해야 할 서류가 미비된 모양이다. 노인은 겨우 돈 몇 만원 내주면서 요구하는 것이 왜 이리 많으냐며 막무가내였고, 직원은 쩔쩔매며 회사의 규정과 원칙을 설명하지만 두 사람의 실랑이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창구도 하나뿐인데다 다른 직원도 없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여 가까이 되는 동안 직원은 상사의 사무실을 여러 번 들락거렸고 보험사의 양보로 일이 해결됐다.

보험에 가입하기는 쉽지만 문제가 생겨서 막상 보험금을 지급받으려면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아는 사람의 권유로 들다보니 지급액과 약관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만기 시까지 아무 일 없으면 좋겠지만 살다보면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되고 처한 현실에서 개인이 보험사를 상대로 주장을 펼치기엔 바위로 계란을 치는 일과 다름이 없음을 볼 때 은행이든 보험이든 서민이 상대하기에 만만한 곳은 없다. 따지고 보면 예금자보다는 대출자가 은행의 입장에서는 더 큰 고객이 될 것 같은데 서민들이 돈을 빌리기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금융기관도 나름대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겠지만 약자에게 일수록 더 냉엄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금융기관의 높은 문턱이 쉽사리 낮아지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기계 고장이라는 메시지가 자동화기기 창에 떠 있는 것 보다는 고객의 양해를 구하는 글을 기계에 부착하는 작은 수고가 은행을 찾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웃음으로 넘기게 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바쁜 시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하는 은행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 삼기에 충분했고, ‘기계도 병이 나면 아프니까 소중히 다뤄야지’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런 것이 진정한 서비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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