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8일 ‘인민혁명당 재건사건’과 관련 대법원은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들은 선고 후 20시간 만에 처형됐다. 나머지 사건관련자 15명도 무기징역 혹은 징역 15~20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법정에서 무고함과 고문, 조작 등에 대한 의혹을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국내외 반향도 컸는데, 뉴욕타임스는 “박정희의 근대민주주의는 조지 오웰의 1인 전제정치”라고 비난했고 워싱턴포스트와 더 타임스도 유신정권의 독재와 탄압 실태를 상세히 보도하며 재판에 대한 유감을 밝혔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회’는 사형이 집행된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1995년 문화방송이 사법제도 100주년을 기념해 판사 3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혁당 사건 재판이 ‘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이었다고 응답해 법조인들 스스로 재판의 잘못을 인정했다. 2007년 유족들과 피해자들은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무죄판결을 받았고, 8월 21일에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인정돼 국가로부터 637억원의 지급판결을 받았다.
결국 ‘인혁당 재건위사건’은 국가권력에 의한 사법살인이자 정권에 의한 최악의 조작사건이라는게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이자 대내외 객관적 기관들의 역사인식이다. 또 국정원을 비롯한 각종 진상위원회를 통해 입증된 객관적 실체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력 대권후보인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는 인혁당사건과 관련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말로 인혁당사건을 논란화했다. 박 후보의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4년에도 박 후보는 연찬회에서 “과거의 잘못을 사과할 만큼 충분히 사과했다”며 “법적으로 전부 결론난 사항들”이라고 문제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창룡문’은 철저하게 중도를 표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길을 가고자 한다. 따라서 인혁당 사건을 말하는 것은 보수와 진보, 또는 진영논리와 무관함을 분명히 한다. 중요한 것은 향후 우리나라를 5년간 담임할 가능성이 높은 대권후보의 역사관이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새누리당내 반대 목소리도 이와 같다. 국민들은 역사회귀를 위해 ‘박정희의 딸’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 박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는 것이다.
향후 5년간의 역사를 써나갈 대통령이 개인사 혹은 감정의 장벽에 가로막혀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불행해 진다. 박 후보는 팩트(Fact)를 기초로 한 보편적 역사관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