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일컫다. 산업화 이전 우리사회에서 운전기사가 전문직으로 취급받던 때도 있었다. 자동차가 희소하던 시절, 운전기사도 적었고 이들은 운전부터 자동차 정비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서는 전문성을 인정받기 충분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길을 메우는 요즘, 운전기사는 3D업종 중에서도 천직(賤職)이라는게 운전기사들의 하소연이다. 이들 운전기사 대부분은 하루하루 사납금 채우느라 사투를 벌이고, 박봉 속에 폭력손님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달리 기업인, 정치인 등에게 고용된 운전기사들은 사정이 천차만별이다. 우선 고용 불안으로 인해 택시나 버스기사들을 부러워하는 경우다. 임시직 혹은 비정규직 형태의 이들은 뒷자리에 앉는 ‘높은 분’이 주는 점심값이나 용돈을 아껴 생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반면 요즘 ‘높은 분’의 불법 정치자금 폭로로 정치권을 흔드는 운전기사들은 우리가 아는 운전기사라기 보다는 쇼퍼(Chauffeur)에 가깝다. 자동차문화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에서 비롯된 쇼퍼는 주로 롤스로이스나 캐딜락 같은 최고급 차량을 운전하며 경호, 통역, 의전 등의 전문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페셜리스트를 의미한다. 품격을 중시하는 영국 황실은 물론 영미권 상류층에서는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높은 분’을 모시는 우리나라 운전기사들은 쇼퍼와 같이 운전과 의전, 경호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회의원 운전기사의 경우 공무원신분으로 8~9급 대우, 혹은 5급대우까지 받으며 때때로 생기는 짭짤한 부수입(?)으로 선망의 대상이다. 몇 해전, 국회 운전기사 대기실에서 억대의 도박을 즐기던 운전기사들이 적발됐는데, 놀라운 뒷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던 적이 있다. 이들 대부분의 ‘먹고살만한’ 재력을 지녔고, 거의가 유력인사의 인척이거나 지근거리에 있는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후보의 멘토이자 캠프 좌장인 홍사덕 전 의원이 운전기사의 말 한마디에 낙마했다. 아직은 사건의 실체가 명확치 않으나 운전기사가 불법자금 수수를 제보해 파장이 일자 홍 전 의원은 새누리당을 버리고 탈당했다. 앞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회장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영어(囹圄)의 몸이 됐는데 이 역시 운전기사의 말이 씨가 됐다. 국회에서 체포결의안이 통과된 현영희 의원, 청주지검에서 조사중인 박덕흠 의원, 저축은행비리 김찬경 미래저축회장, 김두우 전 청와대 수석 등을 나락으로 내몬 것도 운전기사의 말 한마디였다.
운전기사가 세상을 운전하고 있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