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史記) 자객열전에 소개돼 유명한 ‘사위지기자용(士爲知己者用),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이라는 고사가 있다. 이는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는 뜻으로 주로 선비들의 강단을 강조할 때 인용된다. 전후 맥락의 뜻은 뒤로하고, 여기서 보여주듯 동양의 사고에서 화장(化粧)은 여성의 몫이었다. 불과 한 세대 전만해도 여학생들의 화장은 있을 수 없는 일로 학칙위반이었고, 성인 여성의 짙은 화장마저 손가락질 받던 시절이 있었음을 보면 우리사회 역시 화장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화장하는 한국 남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아니 놀라울 정도로 많은 남자들이 화장에 공을 들이고 있어 남성화장품 시장이 세계에서도 가장 크다는 집계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우리니라 남자들이 피부관리를 위해 지출하는 돈이 한 해 4억9천550만 달러(5천574억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시장의 21%에 차지하는 규모이며 올해는 우리나라 남성화장품 시장은 8억8천50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게 국내 최대 화장품회사 측의 추계다.
화장하는 남자가 크게 늘어난 것은 놀랍지만 화장하는 이유는 안쓰럽다. 외신은 우리나라 남자가 화장하는 이유를 취업, 승진, 사랑 등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으로 해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학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경제적으로 지위가 높아진 여성들이 배우자의 외모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며 입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남자답다’는 표현으로 남성의 우악스러움과 거칠고 보수적 행동을 용인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남자답다’는 표현이 ‘시대에 뒤떨어진 남자’를 의미하는 듯하다. 어디 화장뿐인가. 취직과 결혼 그리고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성형수술을 받는 남자 또한 급증한 상황에서 화장은 이제 자연스러울 뿐이다.
과거 남자의 짙은 화장은 ‘동성애자’로 오해받기 십상이었고 영화속 인물이나 외국에서나 행해지는 희귀한 일로 여겼다. 하지만 생명연장과 건강한 삶이 강조되면서 등장한 ‘꽃중년’에 대한 동경은 많은 남자들을 화장대에 앉게 했다. 이제는 TV 드라마 속 인물뿐 아니라 우리 생활주변에서도 화장을 하는 남자를 쉽게 만나게 되며, CF의 강한 영향인지 모르지만 잡티없는 깔끔한 얼굴은 ‘성공한 CEO’의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 남자, 이제는 화장법을 배워할 때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