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맞닿아 북녘하늘이 눈앞에 보이는 대마리는 철원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민통선 마을로,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청정 지역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작은 형님은 내가 전화를 할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한번 왔다 가라고 하셨다. 작년 여름부터 벼르다가 휴가를 내고 내려갔다.
맘만 먹으면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남짓 달려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그동안 무엇이 그렇게 바빴던지 1년에 한 번 가기도 힘들었다. 고향의 여름은 푸르다. 산과 들이 푸르고 하늘이 푸르다. 이곳을 떠난 지 몇 십 년이 흘렀어도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의 품속 같은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양이다. 포도넝쿨로 뒤 덮인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때 제비 한 쌍이 먹이를 한입 물고 처마 밑에 있는 둥지로 날아들었다. 날개가 삐쭉 나온 대여섯 마리의 제비 새끼들이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어미제비는 연실 벌레를 잡아 크게 벌린 제비새끼 주둥이에 물리고 급히 날아갔다. 구름 한 점 없는 불볕더위에 어미제비는 먹이를 찾아 숲속을 날아다니다가 단 한 번도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제비의 눈물겨운 자식 사랑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정겨운 농촌의 풍경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제비를 볼 수 없다. 내가 처음 서울로 내려와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제비가 떼 지어 날아다녔는데 이제는 그 모습을 농촌에서 조차 보기 힘들다. 난 어렸을 때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따뜻한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이른 봄 초가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지저귀는 제비의 노래 소리에 사람 사는 것 같았다. 제비는 농촌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와 집집마다 둥지를 틀고 한 해에 두 번 새끼를 쳤다. 알에서 나온 새끼 제비는 보름정도 지나 턱 아래에 적갈색을 띨 때면 둥지 안에서 주둥이를 내밀고 앉아 있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아버지는 올해 집을 짓고 살던 제비는 내년 봄에 또 다시 찾아온다고 하시면서 제비는 은혜를 잊지 않는 새라고 말씀 하셨다.
제비는 빈집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이를 보면 제비는 사람 곁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연약한 새임을 알 수 있다. 제비는 낟알을 먹지 않고 해충을 잡아먹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유익한 새이다. 올해도 벌써 입추와 말복이 지나 여름동안 기승을 부리던 찜통더위도 한풀 꺾인지 오래다. 지난 여름 고향집 처마 밑에 살던 새끼 제비도 지금쯤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 짓하며 강남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 옛날 추수가 끝난 늦가을! 텅 빈 들판을 맴돌며 따뜻한 나라를 찾아 떠나던 수백 수천마리의 제비 떼가 생각난다. 그들은 작별 인사를 하듯 하늘을 높이 날아오르다 땅을 스치듯이 원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생각대로라면 세월이 흐른 만큼 제비 숫자도 늘어났어야 한다. 그러나 강남으로 날아간 제비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이제는 보기조차 어려운 세상으로 변해버렸다. 오늘날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에 곤충들이 죽어가고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도 들어선 빌딩의 숲이 제비를 이 땅에서 몰아내고 있다. 문득 지난 여름 고향에 살고 있던 제비가족이 생각났다. 그들이 자라고 번식해 옛날처럼 어디서나 제비를 볼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