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 하면 푸르디푸른 하늘, 붉게 익은 고추, 한가로운 고추잠자리 등이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단풍(丹楓)’을 빼놓고 가을을 이야기할 순 없다.
생동감 넘치던 여름을 지낸 나뭇잎들이 가을이라는 계절변화로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스스로 분해돼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변모한다. 이는 분해과정에서 안토시안이라는 색소가 생성되는데 단풍의 노랗고 빨간 색깔은 안토시안의 종류에 따라 결정된다는 설명이다. 기상청은 보통 산 전체의 20% 정도가 색깔을 바꾸면 ‘첫 단풍’으로 분류하고, 80%가 넘어서면 ‘절정기’로 예보하는데 이때가 바로 단풍구경에 나설 때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우리와 같은 단풍구경의 풍습이 전해지는데, 단풍놀이에도 정치의 음습한 그림자가 엿보인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의 패자(覇者)들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거나 지방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해 거국적 단풍놀이에 나섰다는 기록들이 전해진다. 지금도 단풍놀이에 나서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게 마련인데, 일본 전국시대에는 단풍나무를 조경하듯이 옮겨 심어야 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대느라 지방 다이묘들은 중앙정부에 대항할 힘을 기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단풍을 이루는 수종이 다양해 색깔은 물론 상당기간 지역에 따른 특색있는 단풍놀이를 즐길 수 있다. 단풍나무뿐 아니라 신나무, 감나무, 빗살나무, 자작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등이 골고루 분포된 설악산, 내장산, 지리산, 북한산 등이 단풍으로 유명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예전 선비들은 음력 9월 9일인 중구절(重九節)이 되면 전국 명승지를 찾아 단풍이 나서 국화를 넣은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 등의 풍유를 즐겼다. 요즘 초·중·고등학교의 소풍과 대학생들의 MT가 가을에 몰린 것도 이같은 이유로 추론된다.
전국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10월초 설악산을 시작으로 치악산과 소백산을 거쳐 10월 중순에는 속리산, 월악산에 이르고 10월말에는 내장산, 지리산에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기상청은 내다봤다. 일상의 분주함으로 단풍을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11월 초까지만 발품을 팔면 남해가 가까운 두륜산이나 한라산에서 단풍을 맞이할 수 있다.
시인은 “추석이 내일 모레 기둘리리, 바람이 잦이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라고 이 계절을 노래했다.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보면, 우리 마음에도 붉은 단풍이 피어오른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