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담한 해바라기 울안의 가족사를 밝히려는 듯 까맣게 익어가고 지난 태풍을 이겨낸 대추 몇 알 붉게 익어간다. 대추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는 속담이 떠올라 혼자 웃음을 지으며 잘 익은 대추 한 알을 깨문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 입안에 싱싱한 향기가 감돈다. 고향의 맛이다.
어릴 적 뒤란에 대추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이맘때면 수시로 대추나무 밑을 뒤지곤 했다. 가끔 떨어지는 대추를 주워 먹기 위해서다. 그런데 먼저 익어 떨어진 대추는 대부분 벌레가 들어있거나 썩은 것이 많았다. 대추를 못 줍는 날은 긴 장대로 대추나무를 두들겼다. 우수수 쏟아지는 대추 속에는 덜 익은 대추도 있었고 쐐기가 몇 마리씩 있어서 쐐기에 쏘이면 무척 가렵고 아팠다.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도랑으로 달려가 돌로 살을 벅벅 문질러 살갗이 벗겨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는 명절 제상에 올릴 것이라며 손도 못 대게 했지만 간식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우리들의 심심찮은 먹을거리였다. 알밤이 떨어질 때면 밤나무 밑을 기웃거렸고 고구마 두둑을 뒤져 덜 자란 고구마를 캐다 들켜서 부지깽이로 맞은 적도 있다. 큰댁이 멀어서 제사는 아버지만 참석했고 나는 제사를 지내거나 참석하는 아이들을 무척 부러워했다. 특히 명절날 옥춘사탕을 빨아먹어서 입 언저리가 빨갛게 물든 친구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커서 시집 갈 때는 꼭 제사 지내는 집으로 가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제사는 안 지냈지만 송편은 꼭 빚었다. 명절 무렵에는 방앗간이 바빠서 어머니는 새벽부터 방앗간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섰고 쌀가루를 빻는 일만으로도 송편의 절반은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팔 남매가 삥 둘러앉아 송편을 빚었고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시집가서 예쁜 딸을 난다는 말에 서로가 정성 들여 만들었지만 송편의 모양은 제각각이었고 각자가 좋아하는 소를 넣어 만들었다. 장난기 많은 어린 남동생을 가끔씩 흙장난을 하다 그 손으로 쌀 반죽을 문질러 어떤 때는 송편을 먹을 때마다 으적이기도 했다. 가마솥에서 막 쪄낸 송편에서는 솔 향이 듬뿍 묻어났고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졸졸 흐르는 송편을 한 대접씩 담아 이웃과 나눴고 우리들은 각자 자기가 만든 송편을 찾아먹기에 바빴다. 어떤 것은 터지기도 하고 어떤 송편은 아기 주먹만 하기도 했지만 골라먹는 재미 또한 컸다.
송편이 끝나면 어머니는 무쇠 솥 뚜껑에 누름적을 붙였고 물을 펄펄 끓여 알 낳는 닭을 잡아 손질을 하고 나서 밤이 늦도록 우리가 명절날 입을 옷을 손질했다. 창살로 스미는 달을 올려다보면서 달이 참 곱다며 한참씩 눈을 떼지 못하던 어머니. 지금은 개발이 돼 동네 어귀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에 6차선 도로가 생겼고 대를 물려 농사를 짓고 고향을 지키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며 지금은 추억만 남아있는 고향이다. 다행이도 선산이 거기에 있어서 가끔은 찾아간다.
나의 성장이 있고 코흘리개 적의 첫사랑이 있고 학창시절이 있어 소중한 곳, 가끔씩 떠올리며 나를 돌아보고 유년을 기억할 수 있는 곳, 마음의 고향이다. 도심에서 자라 자연과 친해지기보다는 기계문명과 더 친한 아이들을 데리고 이번 추석에는 고향을 가고 싶다. 들꽃 한 줌 꺾어 머리에도 얹어보고 도토리도 몇 알 주워보고 도란도란 내 성장의 흔적들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