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중에 ‘전국노래자랑’ 만큼 명절 고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드물다. 예심장소부터 정규방송 녹화장까지 전국 어디나 떠들썩한 마당이 된다. 32년의 세월동안 매주 전국 곳곳을 돌며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어냈다. 지역특산물을 알리고, 상전벽해(桑田碧海)된 고향 소식을 듣는 이들에게 전국노래자랑은 TV코너 이상의 것이었다.
특히 지켜보기만 하던 시청자가 직접 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하고, 참여한다는 형식을 30년 이상 고수해 왔다는 점은 시청율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출연자들은 탈락을 뜻하는 ‘땡’소리를 듣고도 “땡해도 나는 좋아~” 를 외치며 웃는 얼굴로 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의 터줏대감이자 ‘땡’과 ‘띵동댕’의 실로폰소리로 생사를 결정했던 김인협(71) 악단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32년간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송해(85) 옹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국민을 웃고 울리던 그가 폐암으로 26일 유명을 달리했다. 출연한 꼬마에게 1만원짜리 지폐를 쥐어주며 인자하게 웃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이 아직도 많다. 고인은 폐암으로 거동이 어려운 가운데 지난 연말 전국노래자랑 연말결산무대에 오르는 초인적 애정을 보여줘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여기에 사회자 송해옹 마저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지난 23일, 송 옹은 그의 무대인생에서 최고 전성기를 열어준 전국노래자랑의 녹화에 불참했다. 그가 사회를 맡은 후 초유의 사태로 이미 예심도중 건강이상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직행했다는 후문이다. 아직까지 뚜렷한 병세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를 ‘젊은 오빠’로 추앙하는 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국노래자랑은 1980년 11월 9일 시작된 프로그램 이름, 편성채널, 방송요일 및 시간대를 최장기간 유지한 최장수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국민 프로그램’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중국동포를 위해 중국 선양에서, 북한동포를 위해 평양에서까지 공연을 했으니 허명(虛名)이 아니다.
매년 연말에 펼쳐지는 결선에서 대상을 수상한 출연자에게는 한국가수협회소속의 정식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박성철 등 인기가수를 배출, 가요계에서의 위상도 챙겼다. 현재 트로트계 최고의 여가수로 꼽히는 장윤정도 예선에서 탈락했다는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지구촌에서 활동 중인 연예인 중 최고령자인 송 옹의 건강과 함께 전국노래자랑의 롱런을 기대하는 것은 창룡문뿐이 아닐 것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