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통령선거가 있던 2004년 주한 미국대사관의 초청을 받아 미국문화원에서 만찬을 한 적이 있다. 당연히 화제는 대선으로 옮겨갔고, 대화도중 “누가 당선되는 것이 한국에 유리하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당시 선거는 현역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한 마당이어서 관리를 포함한 테이블시터들이 당연히 ‘부시’를 외칠 줄 짐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테이블에 함께 한 모든 미국인들은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뜻을 모았다. 이유는 부시는 공화당이고, 케리는 민주당이라는 단순한 것이었다. 그때는 짧은 영어와 짧은 시간으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후에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국을 제외한 어떤 국가의 희생도 강요할 수 있으며, 그것도 무력을 사용하는 ‘힘의 논리’를 보면서 이해를 했다. 한국도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으면 과거 한국전쟁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애치슨라인’처럼 미국의 보호구역에서 한국도 언제든 제외될 수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물론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라고 미국 국익에 앞서 한국을 챙겨주지는 않을 것이지만 최소한 공화당 출신보다는 도덕적이고 따뜻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최근 미국대통령을 미국인이 아닌 세계인들이 선출하면 누가 이길까를 조사한 흥미 있는 외신이 도착했다. ‘UPI-윈갤럽 인터내셔널’이 지구촌 32개국 성인남녀 2만6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민주당인 오바마 후보가 압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31개국이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고, 유일하게 이스라엘만이 이란공격에 동조한 공화당 롬니 후보에게 한 표를 주었다.
지난달 발간된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구촌국가를 오바마 지지는 ‘파란색’, 롬니 지지는 ‘빨간색’으로 표시했는데,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였다. 한국 역시 ‘파란색’이어서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 정부당국자들도 속으로는 오바마를 지지할지 모르지만 말을 못하고 있다. 어디 우리 당국자들뿐이겠는가. 미국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모든 국가가 숨죽이며 결과만 주시하고 있을 뿐 선호 후보를 말하지 못하고 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미국의 정치일정에 개입하지 않는 외교적 예의와 자칫 초강대국 미국의 눈밖에 벗어날까 하는 걱정이 입을 닫게 만든다. 여기에 이번 선거와 같이 초박빙 상황에서 누가 이길 줄 알고 감히 도박을 하겠는가. 여하튼 결과가 궁금하다./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