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달 정도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대진표가 다시 안개 속에 휩싸여 있다. 지금쯤이면 각 후보의 공약이 발표되고 국민들이 TV토론을 기대할 시점인데 야권은 후보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 쪽 협상팀이 단일화 협의 중단을 선언했고, 언제 협의가 다시 개시될지 알 수가 없다. 물론 야권지지자들의 원성 때문에 다시 테이블에 마주서려고 하겠지만 단일화 협상이 물 건너가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모두 후보로 등록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고, 후보등록 후에야 다시 단일화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주요한 이슈를 집어삼키고 정책과 인물대결을 실종시키는 작금의 상황은 아주 비정상적인 모습이며 정당정치를 실종시키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는 기본적으로 차선이 하나밖에 없는 도로에서 두 대의 차가 마주보며 둘 다 가속기를 밟아 죽거나 아니면 한쪽이 양보하기를 기대하는 치킨게임과 같다. 국민이 이런 불안한 치킨게임을 왜 지켜봐야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우선 민주당은 대통령후보를 뽑은 것인지, 아니면 후보단일화에 나갈 후보를 뽑은 것인지 책임 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최종적으로 후보를 내지 못한다면 정당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권교체라고 하는, 다수 국민이 원하는 보다 더 큰 대의가 있다면 민주당은 공당으로서, 그리고 다수 의석을 점한 제1야당으로서 후보단일화를 원만하고 국민적 박수를 받는 모습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차제에 이번 후보단일화 논쟁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
첫째, 권력구조상의 문제로써, 현재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도는 승자 독식의 제로섬 게임이다. 상당한 정도의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지지율에서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뒤지면 패자는 얻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대통령후보 후보단일화 협상에서도 양보나 타협이 쉽지 않은 이유는 한국 대통령제의 성격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소수당이라 하더라도 권력참여가 보장되는 의원내각제로 권력구조를 교체하거나 대통령이 통일, 외교, 국방을 관장하고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총리는 나머지 국정을 총괄하는 이원집정부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는 개헌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며 그 과정에 많은 논쟁이 있겠지만 이제 검토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둘째, 최근 제기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법 개정을 통한 대통령 결선투표제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제기되는 최소한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써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하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2차 투표에서 최종 1위와 2위 간의 결선투표를 통해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탄생시킬 수 있다. 또 하나는 진보세력이나 여타 소수 정파 후보라 하더라도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국민에게도 다양한 이념이나 정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인신공격이나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약화시키고 선거를 정책대결 중심으로 이끌어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할 경우 대통령 선거를 두 번 치러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이 후보단일화로 국민을 피로하게 하고 정책대결이 실종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제도나 법의 변경을 통해서 기본 대통령 선거제를 고칠 수 없다면 야권의 후보단일화는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후보 단일화 이전에 정책 조정을 통한 정책단일화가 이루어져 한다. 둘째, 후보들 혹은 진영 간 자리 나누기와 공직배분이 단일화의 조건이 되거나 국민에게 공표되지 않는 어떤 이면 합의를 통한 단일화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후자는 특히 무소속과 정당간의 합의라면 공직선거법에 위반될 뿐 아니라 선거풍토와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하여 권력획득만을 위한 야합이 아닌 보다 큰 대의를 위한 단일화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연대와 단일화조건에 대한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며 그래야만 단일화가 국민적 박수 속에서 축복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