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시대를 대변하는 도시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인류에게 문명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아테네, 인류 최초의 세계국가를 대변하는 로마, 대륙문화가 충돌해 문화를 꽃피운 이스탄불, 산업화를 통해 근대의 출발을 알린 런던 등은 인류사를 장식하는 도시들이다.
특히 중세유럽의 역사를 요동치게 한 ‘예루살렘(Jerusalem)’은 빼놓을 수 없다. 종교가 인간의 삶을 재단하던 중세에 기독교는 영육간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들이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자고 나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중세 기독교는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실현하려다 연옥에 들어갔고, 르네상스의 도래와 함께 중세라는 시대도 종막을 고했다.
중세 유럽역사의 이야기꾼 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십자군전쟁’에서 수많은 민중의 죽음과 희생을 야기한 십자군전쟁은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종교적 신념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인류역사상 가장 긴 200년간의 광기어린 전쟁은 오로지 예루살렘을 향해 있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의 성지(聖地)다. 예루살렘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은 예루살렘에 위치한 ‘황금사원’이다. 황금사원 자리는 원래 BC 959년 이스라엘 솔로몬왕이 유대인들의 성전을 건립한 곳이다. 이후 바벨론의 침입으로 파괴됐다가 재건됐으나 AD 70년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는 이곳에 주피터신전을 세웠다. 십자군전쟁을 통해 잠시 기독교도가 수복한 후에는 기독교인들의 예배처로 사용됐으나 곧 이슬람세력에 넘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오마르사원, 즉 황금사원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예루살렘의 특정장소에 유대교 성전과 로마신전, 기독교 예배당, 이슬람사원이 번갈아가며 켜켜이 쌓여진 것이다.
이곳에 다시 화약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군지도자를 살해하면서 촉발된 양측의 포격전으로 예루살렘이 42년 만에 로켓포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그동안 양측은 성지인 예루살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피해왔는데, 이 불문율이 깨지면서 전면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앞서 소개한 황금사원 중심에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한 바위가 있는데, 기독교인들의 성스러운 곳이다. 이슬람교도 또한 이곳을 아브라함이 아들 이스마엘을 바치려한 곳으로 숭배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가 선지자로 숭배하는 공통 조상이다. 이스라엘과 이슬람은 한 뿌리인 것이다.
같은 핏줄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우리 형편상 더욱 안타깝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