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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한인숙"小雪을 보내며"

 

베란다에 서서 들녘을 본다. 가을걷이를 마친 들녘은 한가롭다 못해 스산하다. 멀리서 개짖는 소리 들리고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어릴 적 우리 집 풍경 같다. 생솔가지를 태워 밥을 지으면 굴뚝으로 거뭇한 연기가 빠져나오고 눈이 매운 어머니는 행주치마로 연실 눈물을 닦아내며 밥물이 끓어 넘치는 솥뚜껑에 행주질을 했다.

쇠죽을 끓이고 난 잔불을 밥솥 아궁이에 넣어 뜸을 들이면 마당까지 번지는 밥 냄새가 얼마나 좋던지. 가마솥을 열 때 피어오르던 뽀얀 김과 구수한 쌀밥 냄새 그리고 적당히 눌은 누룽지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지금은 먹거리가 흔하고 간식도 많지만 예전에는 먹거리가 그렇게 흔치 않았다. 된서리가 내리고 나면 밭둑에 있는 고욤을 털었다. 바닥에 멍석을 깔고 장대로 두드리면 다닥다닥 붙어있던 고욤이 우두둑 쏟아졌다. 가지째 꺾이거나 터진 것도 있지만 어머니는 고욤을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아 장독대에 두었다.

동지섣달, 어둡기 전에 저녁을 먹고 나면 밤은 왜 그리도 길고 배는 빨리 고파 오는지. 그런 날 어머니는 눈이 허옇게 쌓인 장독대를 손으로 쓱쓱 쓸어내고 고욤 한 대접에 수저를 식구수대로 꼽아 내왔다. 먹자 할 것도 없는 것이 씨는 얼마나 많던지. 씨를 골라내다보면 어느새 고욤은 바닥이 나고 씨만 소복이 남아 있곤 했다.

이맘쯤이면 온 동네가 수런거렸다. 소금물을 받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며 배추를 절였고 여인네들은 절인 배추를 함지박 가득 머리에 이고 도랑으로 줄을 잇고 남자들은 항아리 묻을 구덩이를 파고 볏짚으로 지붕을 헤이면서 막걸리 잔치를 열곤 했다.

솥뚜껑에 붙여주던 누름적이 얼마나 맛있던지 누구네 김장하는 날은 동네잔치 날이었다. 십여 가구 정도 사는 소박한 시골동네가 북적였고 아이들은 들며나며 밥도 없는 배추쌈을 볼이 터지도록 받아먹으며 얼굴에 벌겋게 양념을 묻히고 놀던 생각이 난다.

김장이 겨울 식량의 절반은 차지했던 것 같다. 큰 항아리 대여섯 개씩 배추김치를 하고 동치미를 담아도 봄이 되기 전에 김치가 동나는 것을 보면 김장이 겨울 식량의 한 몫을 차지하였음이 분명하다.

김치 볶음밥에 김칫국, 그리고 고구마에 척척 걸쳐 먹는 잘 익은 김치까지 김치 한 포기 밑둥 뚝 잘라서 상에 올리면 다른 반찬 없어도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요즘처럼 반찬투정이니 입맛이 있네 없네 하는 것은 사치이고 배부른 투정이었다.

등하굣길 무밭에 무 하나 뽑아 옷에다 흙 쓱쓱 닦고 앞니로 껍질을 벗겨 먹고 나면 한참씩 속이 쓰리기도 하고 신물이 넘어와 고생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건강한 먹거리였다.

요즘은 많은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한다. 흔해진 열대 과일이며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피자,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가 식감을 자극하고 비만을 불러 오기도 한다. 이러다보면 우리 음식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건강한 먹거리와 건강한 음식 문화가 필요한 때이다.

외딴 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를 보면서 고향을 떠올리고 어릴 적 향수에 젖어본다. 추억이란 늘 아름답게 마련인지 콧날이 시큰해온다.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안견문학상 시 대상 ▲ 시집- 푸른 상처들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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