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세계8강’에 오른다고 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12월 중 우리나라 무역규모는 1조 달러를 돌파하고, 올해 무역규모는 세계에서 8위를 기록한다. 이탈리아를 밀어냈다고 하니 마치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이탈리아를 격파한 쾌감이 다시금 밀려오기도 한다.
통계결과, 우리나라보다 무역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뿐이다. 2010년 9위로 10위권에 들더니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주요 경제지표 중 하나인 무역규모에서 세계8강을 기록한다니 경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다. 우선 무역규모 8위가 세계에서 8번째로 잘 산다는 방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대치상황이라는 리스크를 감안하면 일거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허약한 경제체질임을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변수가 아니더라도 내수 경기를 통한 스스로의 경제부양이 힘든 상황에서 우리경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의 경제상황은 늘 마음 졸이는 부분이다. 오로지 수출에 목을 매는 우리 입장이 글로벌 경제의 급변에 취약할 수밖에 없음은 과거 외환위기나 미국발(發) 금융위기 때 절감한 바 있다.
특히 ‘국가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한’ 일본식 경제왜곡이 우리나라에도 심화되고 있음이 경계된다. 무역규모가 커지고 수출입을 계산하면 수십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한다고 하니 국가는 부자가 돼가는 듯하다. 그런데 세계8강이라는 세계경제지표와 함께 우리가 받아든 성적표에는 ‘출산율 꼴찌’, ‘자살율 1위’라는 달갑지 않은 지표도 적혀 있다.
왜 아이를 낳지 않고,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넘쳐날까. 삶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낳아 잘 기를 자신이 없다. 맞벌이를 통해 빠듯한 생활을 영위하는 세대에게 육아와 양육 그리고 엄청난 입시부담, 취직걱정 등은 애를 갖는 행복을 꿈꾸지 못하게 한다. 또 분배정의의 실종과 사회안전망 미비,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적 위화감 등은 우리사회에 어두운 그늘을 내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요즘 이런 이야기를 잘못하면 곧바로 진영논쟁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분배’를 이야기하면 ‘좌빨’이라는 비난을 사고, ‘경제성장’을 말하면 곧바로 ‘보수꼴통’이라는 메아리가 돌아온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좌우 진영논리에 넘어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불편한 진실임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세계8강도 축하할 일이지만, 이를 기반으로 우리 속의 모순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