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흑백TV를 통해 본 서부사나이는 멋있었다. 악당보다 먼저 총을 뽑아 물리치는 장면은 뇌리에 깊숙이 박혔고, 동네 아이들과 흉내 내기에 바빴다. 비겁하게 뒤에서 쏘지도 않고, 오른손을 다치면 왼손으로 악을 섬멸했다.
성인이 되면서 총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해외소식을 통해 내전(內戰)을 벌이는 아프리카의 각국이 총을 통제하지 못해 겪는 참담함을 목격하고 총의 파괴력에 몸서리쳤다. 천진난만한 10대 소년들이 장난감을 다루듯 소총을 휘두르는 모습은 차라리 천사의 손에 들린 피 묻은 흉기를 보는 느낌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선진국이자 세계경찰로서 지구촌을 선도한다는 미국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민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7명의 희생자 중 대부분인 20명이 어린이들이다. 문명국 미국에서 어린이들이 총기에 의해 희생되는 야만적 사건이 벌어져 충격적이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면서 총기사용을 규제하자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나서 총기규제에 대한 의미 있는 행동을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총기규제가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동안 숱하게 총기규제라는 방울을 고양이 목에 달려고 노력했지만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1982년 이후 미국에서 최소 61차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는데 범인 대부분이 합법적 총기소지자였다고 한다. 무기소지를 줄여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우선 개척시대 이래 전통인 ‘내 가족과 생명은 내가 지킨다’는 정신이 여전하다.
이러한 미국민의 정신을 대변하는 것이 미국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다. 서부영화의 스타이자 벤허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찰톤 헤스턴이 오랫동안 회장을 지낸 미국 내 파워 압력단체다. 미국 보수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찰톤 헤스턴은 생전에 “미국은 총을 드는 용기로 건설된 나라로, 이는 이 나라를 건설한 현명한 백인 조상들이 물려준 권리”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특히 총기사고가 난 직후, 사건 현장 인근에서 열린 집회에서도 “(그래도) 내 총은 죽어도 못 줘”라고 일갈했는데 여기에 동조하는 미국민은 엄청 많다. 따라서 정치권의 합의에 앞서 미국민들의 정신적 합의가 선행돼야 총기규제가 가능할 전망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2억5천만 정에 이르는 총기가 활보하고 있다.
김진호 편집이사·인천편집경영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