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는 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고, 이 날을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날이다. 이날 우리 조상들은 팥죽을 쑤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놓거나, 대문이나 벽에 죽을 뿌렸다. 따라서 동지 하면 자연스럽게 팥죽을 떠올리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 유래는 6세기 중기 중국 육조시대의 호북·호남지방의 행사와 풍속 등을 기록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헌에는 중국 공공씨의 못난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병을 일으키는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기에 이날 팥죽을 쑤어 역병을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귀신 잡는 팥의 유래다.
영양학적으로도 팥은 곡류 중에서 비타민 B1과 엽산 함량이 매우 풍부한 작물이어서 쌀밥과 혼합해 먹으면 겨울에 공급받지 못하는 양분을 보충할 수 있다. 비타민 B1은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바꿔 탄수화물이 근육 내에 축적돼 피로물질로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에 원기 회복과 근육통에 효과가 있고, 쌀이나 찹쌀 등과 영양학적으로도 잘 어울린다.
다수성 품종으로 생산량 증가
또 팥에 풍부하게 함유돼 있는 칼륨(K) 성분은 짠 음식을 먹을 때 섭취되는 나트륨(Na)을 체외로 배출될 수 있게 도와주어 붓기와 노폐물 제거에 효과적일 뿐 아니라 껍질의 풍부한 식이섬유와 함께 작용하여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각기병으로 죽었다는 학설이 제기됐는데, 각기병이 쇼군 등 상류층에서 많이 발생한 이유가 백미 중심의 식습관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팥이 올해 동지를 맞아 가격이 심상치 않다. 연초에 재래시장에 노모를 모시고 팥죽을 먹으러 간 적이 있는데 껍질이 부드러워 국내산 팥만 사용한다는 가게주인은 80㎏ 한 가마니에 100만원을 주고도 구하기가 어렵다고 울상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수요량이 가장 많은 동지를 맞아 국내산 도매가격이 ㎏당 1만1천원으로 지난해 11월 대비 35%나 상승했다. 또한 국내 팥 수입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현지가격도 신년 명절대비 수요증가에 따라 전년도에 비해 10% 상승된 상황이다.
국산 팥의 자급률은 현재 15%에 불과한데, 이러한 이유는 2000년도에 팥 재배면적이 1만2천㏊였던 반면 10년 사이에 4천여㏊로 줄어들어 국산 팥 생산량이 감소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반면에 그동안 농촌진흥청의 신품종 개발연구를 통하여 다수성 품종이 농가에 보급되면서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8%나 증가했다. 그리고 기존의 팥 품종이 덩굴이 뻗어 엉킴에 따라 수확할 때 일일이 손으로 따내야 하던 점을 개선해 덩굴 없이 꼿꼿이 서있는 품종 개발과, 몇 번에 걸쳐 나누어 수확하던 것을 거의 동시에 수확될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였다. 뿐만 아니라 농기계로 수확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돼 농가의 일손을 크게 덜어줄 수 있게 됐다. 이런 신품종들이 종자증식 과정을 거쳐 농가에 많이 보급되면 팥의 국내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좁은 면적에서 최대의 수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제초제 및 병충해 방제를 위한 전용약제의 개발과 소면적 밭작물 농기계 개발 등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 넘어 산이다.
유통질서 확립 등 노력 필요
팥은 한반도, 중국,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지만 중국, 일본 등 주요 생산국의 생산량은 1990년대 100만t에 비해 현재 30만t으로 급감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중국산은 국내산에 비해 3~4배 가격이 싸서 가공업체에서 선호하고 있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급처로 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오르기만 하는 국내산 팥 가격을 진정시키고 안정적인 보급처 확보를 위해서는 신품종 개발 등 연구분야뿐만 아니라 신품종의 특산단지 확대, 논 대체 작물로서의 생산기반 조성 및 국내산 팥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유통질서 확립 등 정부와 농업인 등 국민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