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반주를 곁들인,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훌쩍거린다.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져 말을 잇지 못하고 허허로운 웃음만 흘린다. 20대 초반의 풋풋한 만남이 엊그제 같은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세월은 우리를 60대로 밀쳐 내었다. 언제 벌써, 우리가 이런 이야기 할 때가 되었냐며 먹먹해진 가슴은 뚫리지를 않는다.
얼마 후에는 다시 이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내가 먼저 죽을 확률이 높으니, 당신 혼자서는 전원생활이 힘들다. 해떨어지면 문밖이 칠흑이라, 나 혼자는 바깥잠은 물론 늦은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 은퇴 후, 이곳에 성공적인 정착을 하였다 하나 심중을 뒤집어 보여줄 사람 없는 객지이다. 봄부터 잔디 깎기, 텃밭 가꾸기, 여름 장마철, 눈치우기 등 집안 팎의 관리는 누가 할 것인가.
최근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 해도 친구들은 이미 가고 있다. 오늘도 한 친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지 않았느냐. 내가 건재할 때, 당신 혼자서도 지낼 수 있는 고향에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여 가야 할 것 같다. 자식들이 외국에 있어 뒷일을 봐줄 사람도 없으니 내 손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가겠다. 말하는 나도, 듣는 아내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이기에 목이 메기는 마찬가지다.
3년 전, 고라니가 한 번씩 뜰 안을 기웃거리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봄 개구리 울음소리와 가을 들녘에는 메뚜기가 뛰논다. 봄볕에 나물들이 지천이고 여려진 가을햇살에 은행잎이 내려앉는다. 텃밭의 싱싱한 야채는 지인들과 나누기도 한다. 창밖으로 초록이 시원한 작은 작업실도 마련하여 글쓰기와 그림으로 시간을 즐긴다. 굽이굽이 지난 생의 전설들을 뒤로 하고, 생업에서 해방된 전원의 일상들이 우리에게 얼마만큼 주어졌을까? 질주하는 세월은 손톱만큼 남아있는 젊음마저 앗아가고 우리를 죽음으로 내치고 말 것이다.
60이 넘고서야 겨우 삶의 소박한 여유를 누리기 시작한 우리부부를 밥상머리에서 눈물짓게 만든, 죽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은 ‘죽는다’는 것이고, 가장 모르는 것 또한 ‘죽음’이다. 우리는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죽음 뒤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 불안함과 자신이 소멸될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 아닐까?
장자는 죽음은 삶의 다른 형태일 뿐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죽음을 자연스러운 일이라 해도 범인들은 두려울 뿐이다. 오직 신(神)만이 결정할 수 있는, 죽음의 그날까지 흔들림 없는 삶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철학, 종교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우리 나이쯤이면 그날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는 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창밖으로 노란 은행잎이 화려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길에 어리고 귀여운 소녀 대여섯 명이 재잘거리며 지나간다. 이 앳된 소녀들도 덧없는 세월에 떠밀려 결혼과 출산, 중년을 거쳐 요양원에 누워있는 노인들처럼 늙고 병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끔찍하기만 하다.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반드시 마주쳐야 하는 늙음과 병마와 죽음은, 우리부부에게도 깊은 상념이 되어 이 가을 떨어지는 낙엽처럼 스산하게 다가온다.
▲월간〔한국수필〕등단 ▲한국 수필가 협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가평지부장